혁신을 조달합니다_아이티에스 뱅크

혁신의 포문을 여는
남다른 시선

보행자의 관점에서 시작된 지능형 교통 시스템의 혁신

세상에는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결과가 부정적인 경우, 사건은 ‘사고’가 된다. 과거에는 기왕 벌어진 사고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고 발생 조건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면 아예 사고를 예방하는 방향으로 접근법을 선회할 수 있다.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이티에스뱅크는 지능형 교통시스템으로 교통안전을 구현하는 지능형 교통시스템 전문기업이다. 과연 아이티에스뱅크는 어떻게 교통시스템을 혁신하고 있을까?

보행자를 고려한 아이티에스뱅크만의 시선

아이티에스뱅크의 아이티에스는 지능형 교통 시스템(Intelligent Transport Systems)의 약자다. 아이티에스뱅크의 이종선 대표는 대학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한 1세대다. 그의 대학 동창들은 졸업 후 대부분 설계나 평가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 도로의 설계 또는 교통량의 예측과 평가가 교통공학 전공자들의 일반적인 업무였다. 하지만 전기전자를 함께 공부한 이종선 대표는 교통 신호제어기 부문에 관심을 가졌다. 1998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도로교통공단에 위촉연구원으로 들어가 교통 지능화 사업에 참여했다. 그가 처음 관여한 업무는 전주의 버스 안내방송을 자동화하는 일이었다. 당시까지는 버스 운전사가 녹음테이프를 갈아 끼우며 수동으로 안내방송을 했는데, GPS코드를 입력해서 자동으로 정류장을 안내하도록 개선한 것이다. 이후 무인 과속단속 카메라의 도입 과정을 보면서 그는 지능형 교통 시스템의 미래가 곧 다가오리라고 확신했다. 2001년 그는 과감하게 아이티에스뱅크를 설립했다. 하지만 창업 초기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따라가다 보니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불확실했다. 이종선 대표는 고민 끝에 기존의 시장에 뛰어들어 변화를 쫓아가는 식으론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건 자본이나 조직력이 뒷받침되는 기업의 싸움이지, 작은 규모의 아이티에스뱅크가 감당하긴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이종선 대표는 아이티에스뱅크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우리 회사에는 원칙이 생겼습니다. 제도권에 없는 제품만 만들기로 한 거죠. 그렇게 해서 처음 나온 제품은 교차로 충돌방지시스템입니다. 혁신 장터에 올라간 지금에 비하면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아주 초보 단계의 제품이었습니다. 접근법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신체에서 가장 무거운 게 머리다보니 사람은 땅을 보고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앉아있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신호등은 높은 곳에 매달려 있습니다. 보행자는 아래를 바라보는데, 위험신호는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보냅니다.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해외의 연구논문을 찾아봤습니다. 미국의 산호세 대학 등에선 이미 2001년에 실험을 해서 분석을 해놨더군요. 객관적인 근거 자료의 뒷받침도 받았으니 실제 제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간친화적인 아래쪽 공간을 활용해서 보행자에게 정보를 전달하자는 개념으로, 교차로 가운데 신호등을 심어서 차량이 다가오면 깜빡거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땅에 등을 심어도 된다는 규정이 없던 겁니다. 도로에 신호를 설치했다가 회수하는 등 좌충우돌했습니다. 2015년에 되어서야 제도가 만들어져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활도로지침에 도로 깜빡이 장치가 들어간 건데, 사실 생활도로지침은 지침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침은 공공기관의 내부문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지자체는 교차로 충돌방지시스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아이티에스뱅크가 그리는 지능형교통시스템의 미래

“미래의 지능형 교통 시스템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이종선 대표의 질문이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는 자신의 질문에 답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완전 자율주행 시스템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제도권에선 무인자동차 연구가 한창입니다. 무인자동차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지면 도로에 신호등이 사라질 겁니다. 무인자동차끼리 통신하면서 굳이 정차해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무인자동차와 완전한 자율주행 시스템이 누군가의 꿈일 순 있지만 모두의 꿈일 순 없습니다. 노인들은 변화에 적응하기 두려울 겁니다. 현재 무인자동차 기술의 대표기업은 테슬라죠? 모두가 테슬라를 타고 유토피아로 가진 못합니다. 아이티에스는 다른 방향에서 지능형 교통시스템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2009년 이후 아이티에스뱅크와 이종선 대표가 교통시스템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자, 도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도 눈에 들어왔다. 이종선 대표는 도로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격차’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산업화 사회에서 도로의 최우선 기능은 물류와 승객을 효율적으로 나르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 됩니다. 도로끼리도 상황이 다릅니다. 비좁은 이면도로보다 큰 도로가 우선입니다. 우선순위는 격차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이면도로에는 신호등을 설치하지 못합니다. 신호등의 불빛이 이면도로 앞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신호등이 없으면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이면도로에 진입한 차량끼리 뒤엉켜 통행이 어려워집니다. 이면도로는 큰 도로만큼 안전성이나 편의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도로에서도 격차가 발생합니다. 도로에서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자는 것이, 아이티에스뱅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아이티에스뱅크는 도로에서의 격차를 해소해줄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360° 전 방향을 모두 검지할 수 있는 차량감지센서, 무선차량 검지 및 매립형 정보제공 기술을 더한 태양광 기반 차량 충돌방지시스템, 이면도로에서의 차량과속 및 충돌위험 경고 시스템 등이 아이티에스뱅크의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이면도로 차량과속 및 충돌위험 경고 시스템인 교차점 알리미는 2014년 스위스 제네바국제발명전시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성과에도 불구하고 회사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제네바국제발명전시회의 금상 이외에도 발명으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제도권에서 수상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특허, 성능 인증, GS 인증 등을 모두 획득한 2014년에는 우수조달 자격을 받으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안됐습니다. 정량적으로는 탈락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니, 제품이 저 하나뿐이라는 겁니다. 비슷한 경쟁제품이 없고, 도로에 설치할 법적 근거도 모호해서 우수조달 자격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존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혁신 제품에 유사품이 있을 리 없었다. 처음 등장한 기술의 사용 근거를 법이 미리 찾아뒀을 턱도 없었다. 이듬해에는 베트남의 한 도시에서 아이티에스뱅크의 교통안전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접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민간 기업을 신뢰할 수 없으니 관에서 앞장서라는 것이었다. 계약은 불발되었다. 때에 따라선 이렇게 제도가 혁신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기도 한다.

패스트트랙에서 활로를 찾은 아이티에스뱅크

과거, 아이티에스뱅크의 일부 제품은 특허청의 우수발명품으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되면 수의계약을 할 만한 제품으로 ‘권고’된다. 공공기관의 담당자 가운데 일부는 권고 사항을 참고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정부 조달 사이트에 제품이 있는지 여부만 따진다. 아무리 권고 조건이 따라붙어도 혹시 모를 책임을 감내하기 두려운 탓이리라.

그런데 2020년 여름, 아이티에스뱅크에 기회가 찾아왔다. 패스트트랙에 참여해보라는 것이었다. 패스트트랙에 선정되면 수의계약 자격이 주어진다니, 이종선 대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심사에 응모했다. 11월, 반가운 소식이 왔다.

11월에 수의계약 자격 나오자마자 아이티에스뱅크는 5개 제품군의 14개 모델을 조달장터에 등록했다. 교차로충돌방지장치, 스마트횡단보고, 단일로 사각지대에서 차량이나 보행자의 위험을 알려주는 알림장치, 교행알리미, 감속유도장치의 5개 제품군 모두 조달 계약이 이루어졌다.

교행알리미는 정식 도로가 아닌 좁은 길에서의 알림 장치다. 시골에선 경운기가 다니는 농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교행로가 차량 우회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좁은 교행로에선 두 대의 차량이 동시에 통행할 수 없기 때문에 늦게 진입한 차량은 후진해서 길을 터줘야 한다. 문제는 어떤 차량이 먼저 진입했는지가 모호한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아이티에스뱅크는 한쪽 방향에 차량이 들어서면 알림 표시가 작동해서 시비가 발생하지 않게 해준다. 최근에는 강남구 세곡천의 뚝방길에도 교행알리미 시스템을 시공 준비 중인데, 양측 차량의 현재 위치까지 표시되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이 교행로에선 새로운 시도가 한 가지 더 이루어진다. 국내 최초로 바닥신호등을 설치해서 운영할 계획이다. 770미터 구간의 교행로 바닥에는 적색과 녹색 신호등이 점멸하며 운전자의 통행을 도와줄 것이다. 야간에 어두운 도로에선 바닥신호등이 교통 안전도를 향상해 줄 수 있다. 중국의 일부 지역에선 이미 차량용 바닥신호등을 사용하며 세계 최초의 혁신이라고 선전한다. 이종선 대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차량용 바닥신호등은 제가 먼저 개발했습니다. 태풍에 부러진 신호등을 보고 착안했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근거 없이 바닥신호등을 만들었다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선 바닥신호등을 도로에 설치하면 불법입니다. 세곡천에 시도하는 건 그곳이 법적으로 도로가 아니라 교행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선 혁신제품이 마음 놓고 건방지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테스트베드를 할 데가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은 아우토반을 깔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도 IT 기술력이 마음껏 뛰어놀면서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중심의 스마트 기업

아이티에스뱅크 혁신제품의 또 다른 특징은 교통 시스템을 실제 이용하는 사용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아이티에스뱅크는 고양시와 시 산하기관인 고양지식산업진흥원에 스마트보행로 구축사업을 제안해서 발주했다. 종전까진 어린 학생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학교 앞 300m를 스쿨존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 결과 스쿨존 바깥에서 교통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이티에스뱅크는 마을 사람들과 학교 선생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해당 지역의 통행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위험지역과 위험유형을 분류해서 다채로운 스마트보행로를 구축했다. 어느 지역에는 위험 경고등을 위쪽에, 다른 지역에는 아래쪽에 설치했다. 일부 구간에는 소리로 위험 신호를 알리도록 했다.

“과거에는 획일적으로 선을 긋는 식으로 교통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위험지역과 위험유형은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스마트의 전제조건이 반드시 하이테크이진 않습니다.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교감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서 시민들이 요구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면, 그게 바로 스마트 아니겠습니까?”

고양시의 스마트보행로 사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상을 받았다. 이후 아이티에스뱅크는 대한민국 스마트리빙랩 사업의 선도적 기업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혁신조달 기업으로 수의계약 자격을 갖추면서 성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아이티에스뱅크는 스마트리빙랩 사업으로 3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 전까지의 매출은 20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마진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품을 조달 시장에 등록하면서 아이티에스뱅크의 영업에 나서겠다는
협력업체가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판로도 확대되었다”

8월 초 아이티에스뱅크는 공장을 매입해서 파주로 이전한다. 혁신조달을 통해 혁신기업의 스케일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종선 대표는 사람에 더 집중하라고 이야기한다.

“나이를 먹으면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망막의 능력이 퇴화하면서 밝은 빛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2019년 4월부터 출산율이 사망률보다 낮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고령의 운전자가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시스템을 변화에 맞게 개선할지 찾아봐야 합니다. 교통신호등이 하늘 높이 있으면 노령 운전자의 반응속도는 더 느려질 겁니다. 점점 좋아지는 차량 성능에 반비례해서 말입니다. 과거 차량 규칙을 만들 때에는 노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의 시각에서 교통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었으니까요. 지금까지의 제도를 고수해서 신호등을 하늘 높이 매달아두는 게 옳을까요? 저는 <교통안전편람>을 가지고 있는데, 2001년에 발행된 책입니다. 20년 전과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제도는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법에 근거가 없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혁신조달은 제도에 꽉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아이티에스뱅크에 길을 열어준 제도입니다. 그런데 혁신제품 조사 항목에 시장 실적에 따른 제한이 있더군요. 하지만 3억이나 5억 원의 매출 실적이 있다고 혁신적인 제품을 외면하진 말아야 할 듯합니다. 또, 혁신제품으로 지정된 제품의 수의계약 자격을 3년으로 제한한 규정도 개선했으면 합니다. 조달우수로 지정되면 3년의 수의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 기능 개선사항 등을 심사받아, 수의계약 자격을 3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특허에서 나온 제품을 개선하고 발전하도록 하는 조달우수 제도는 무척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중소기업에서 3년 단위로 새로 특허를 취득하며 완전히 다른 제품을 개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조달우수 재도의 장점을 혁신조달 제도에 반영한다면 혁신적인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