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호 대표는 두 개의 박사 학위와 30개 이상의 발명특허를 지닌 아주 특별한 능력자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연세대학교에서 산업공학(정보시스템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대기업에서 일하며 세계의 선진적인 정보통신기술을 접했다. 최첨단 기술의 발전 과정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벤처기술경영학 분야까지 파고들다 보니 그의 품에는 어느새 두 번째 박사학위가 안겨 있었다.
2012년, 국립 한밭대학교는 그를 산학협력 중점교수로 초빙했고, 백민호 대표의 대전 생활이 시작되었다.
“기술경영 과목과 ‘기업가정신’이나 창업학개론 같은 창업 관련 과목을 주로 전담했습니다.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에 강의 활동을 하면서 집음 기술에 대한 논문도 쓰고 기술을 사업화하는 특허도 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연구소나 대학교에서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붐이 일어났습니다. 집음 기술 사업화에 특허를 지니고 있던 저도 2014년에 한밭대학교 기술지주회사 자회사로 창업했습니다. 교수직과 연구소기업 대표직을 겸할 수 있게 총장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니 가능한 일이죠.” 창업은 생각도 않았던 백민호 대표는 대학교 기술 지주회사와 연구소기업 설립 열풍을 타고 에어사운드를 설립하게 되었다.
“에어사운드라는 이름은 소리를 모아 담아서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천장에 설치하는 집음기를 개발했습니다. 필요한 소리를 모으는 방식은 다양하게 구현됩니다. 2018년에는 유튜버 등 1인 영상 크리에이터를 겨냥한 고품질 무선 마이크로폰, 마이핀플러스를 개발해서 출시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에는 무선 청진기도 개발했습니다.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유선으로 청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환자 진료에 어려움이 생긴 거죠. 마이크로폰 기술을 보유한 에어사운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무선 청진기인 마이핀스코프를 개발해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 기여하려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했던 만큼 충남대학교병원 심장내과 및 격리병동 등에서 빠르게 실증 테스트를 수행했다. 심장과 폐에서 나오는 두 가지 소리를 정확하게 집음 해서 블루투스 방식으로 송수신하는 마이핀스코프의 현장 효용성은 매우 높았다. 현재 에어사운드는 충남대학교병원, 가천대길병원 흉부외과, 전남대병원 이비인후과 등 여러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테스트베드를 확대하며 제품 검증과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마이핀스코프는 무선 이어폰처럼 케이스에 넣는 것만으로 간편하게 충전할 수 있어서 편의성도 높다. 디자인 역시 유려해서 2021년 레드닷 어워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하드웨어 제품 개발을 이어오던 에어사운드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우수한 집음 기술에 인공지능을 접합한 것이다. 백민호 대표가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원하는 소리를 집음 하는 마이크로폰 시스템을 개발하고 특허를 내는 것까진 좋았는데 어떻게 사업화를 진행해야 할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집음 기술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사업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백민호 대표가 구상한 것은 실시간으로 통번역을 지원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통번역 기능을 갖춘 앱들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통번역 앱들은 실시간과는 달리 약간의 시간을 소요한다. 휴대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곧장 통번역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신한 목소리를 서버로 전송해서 통번역 한 후 사용자의 디바이스로 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시간차는 감내할 수 있겠지만 진짜 문제는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장소에서 발생한다. 백민호 대표는 실시간 통번역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딥러닝 음성인식 엔진을 도입했다. 실제로 구사되는 언어는 문법을 벗어나기 일쑤다. 시작과 종결점이 모호한 경우도 많다. 때로는 발음이 뭉개지기도 하고, 숫자나 외국어가 복잡하게 조합되기도 한다. 사람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매우 고도화한 음성인식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어사운드는 한국어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술 가운데 가장 정확한 인공지능엔진을 도입해서 소프트웨어 ‘티키타’를 개발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애써 개발한 제품을 진입시킬 시장 자체가 코로나19로 인해 없어져시다시피 위축된 것이다.
“3년간의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완성한 티키타는 원래 통번역 시장을 겨냥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통번역 시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티키타를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강의하는 소리를 집음 해서 강의록으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소프트웨어가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입니다. 외국어 강의를 우리말로 통번역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이나 한국어학당에서 수업을 듣는 외국인 학생 가운데 강의 내용을 따라가기 버거운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강의 내용을 자막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서비스는 더 없이 고마운 존재다. 백민호 대표는 티키타의 실시간 통번역 서비스가 한류 열풍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티키타 노트는 온라인 콘텐츠도 실시간으로 통번역해서 자막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대면 강의뿐만 아니라 K콘텐츠에도 적용 가능한 거죠. 현재 전 세계에 K콘텐츠 동호회가 8,000개 이상 있습니다. 여기 가입해서 K콘텐츠를 찾는 회원은 1억 명 정도 됩니다. K콘텐츠의 주요 회원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번역입니다. 그런데 콘텐츠가 나오는 속도를 번역 속도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또, K콘텐츠 마니아 가운데 우리나라로 유학 온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말에 능숙해지기 전까지 이들 유학생들은 한국어 강의를 들으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티키타 노트의 통번역 기능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이들이 K콘텐츠 동호회에서 더 적극적인 전파자가 되도록 합니다.”
통번역 서비스는 티키타 노트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티키타 노트의 전부는 아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통번역 품질은 인공지능의 수준에 좌우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에어사운드는 티키타 개발 과정에서 우수한 집음 능력과 정밀한 음성인식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통번역 기능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말 대화를 정확하게 인식해서 자막으로 송출하는 일도 쓰임새가 매우 크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것처럼, 우리 국민 가운데도 한국어를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과 난청인들이다. 백민호 대표는 장애인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끄럽지만 집음 기술을 연구하고 사업화하면서도 전에는 청각장애인이나 난청인들의 어려움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전문 HR 기업인 브이드림의 연락을 받고 우리 기술이 청각장애인과 난청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민호 대표는 청각장애인의 불편을 말로 형언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장애인 일자리 문제가 무척 심각하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직업이 필요한데,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은 일자리에서도 쉽게 소외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인 이상 기업은 전체 근로자의 일정 비율 이상을 장애인 근로자로 고용하도록 하는 장애인 고용 의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채용하는 대신 인턴이나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꼼수가 만연해 있고, 아예 장애인 고용 대신 차라리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겠다는 기업도 적지 않다. 산업계에서 걷히는 장애인고용부담금은 연간 1조 원 규모로 막대하다. ESG경영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점에 기업이 결코 적지 않은 장애인고용부담금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한 부담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해 별도시설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장애인의 근무능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무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 문제도 부담이 된다. 브이드림이 에어 사운드의 기술에 관심을 보인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장애인 근로자와 기업을 연결시켜 주고 수수료를 받는 브이드림 입장에서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온라인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도록 한 에어사운드의 기술력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백민호 대표는 에어사운드의 실시간 자막 서비스가 청각장애인 삶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의외의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에어사운드는 곧장 장애인을 위한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 제작에 나섰다.
“회의에 참가한 청각장애인은 발언자의 입모양을 보고 회의내용을 숙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입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청각장애나 난청을 가진 사람들은 기본적인 회사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장애인을 위한 사업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에어사운드는 뛰어난 집음 기술과 고도화한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을 결합했다. 사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기술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통번역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매우 정밀하고 완성도 높게 사람의 목소리를 자막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은 청각장애인과 난청인의 생활 및 근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완성되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즉시 자막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자막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하지만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에는 확실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우선 인식률이 우수합니다. 에어사운드는 매달 자막의 완성도를 비교 검증하고 있는데, 대기업 제품보다 훨씬 인식률이 높습니다. 서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장점입니다. 이를 전제로, 티키타 노트 소프트웨어를 PC나 각종 안드로이드 디바이스에 플랫폼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기술도 가지고 있습니다. 경쟁 프로그램은 서버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매달 또는 매년 비용을 지불하면서 이용해야 했습니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겐 경제적인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티키타 노트는 안드로이드 디바이스에 탑재해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구매 비용만 지불하면 추가적인 부담이 없습니다. 아마 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부담이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러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시장에 진입하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백민호 대표는 지방에 자리한 연구소 기업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방 소재 기업은 혁신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어도 시장에 노출되는 기회가 적습니다. 이는 투자를 유치할 기회가 적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연구소 기업의 한계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구소 기업은 판매나 매출 증대를 위한 마케팅과 영업 전략에 약합니다. 에어사운드만 해도 아직은 영업부가 없으니까요. 약한 마케팅 홍보능력은 다시 노출과 투자의 기회 감소로 이어집니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이 잠재기술을 발견하기 위해 마련된 혁신제품 스카우터 제도였다.
“혁신제품 스카우터 제도는 공공성 있고 유망한 잠재기술을 발견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잠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연구소기업입니다. 대한민국의 초기 연구소기업이라는 사실 덕분에 에어사운드는 혁신제품 스카우터 추천 자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5개의 대형 연구개발특구가 있는데, 대전의 대덕특구가 가장 큽니다. 연구소기업협회가 우리 회사를 대전테크노파크에 추천했습니다.
대전테크노파크는 후보로 오른 3개 기업과 함께 에어사운드를 혁신조달 추천 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후 에어사운드는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의 공공성을 프레젠테이션 했고, 국민심사단의 심사를 받아 혁신조달 지원 기업으로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에어사운드가 3년간 개발한 기술의 꽃에 혁신조달이 물을 준 것이라고 봅니다. 지방 소재 연구소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전문 쇼핑몰에 입점하려면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공고를 내면 기업과 제품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서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혁신조달에서 공공성을 인정받았다는 입점 근거가 생겼습니다. 에어사운드는 내일 장애인 앞에서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을 시연합니다. 좋은 반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혁신조달 시범사업을 통해 5개의 공공기관에 티키타 노트 라이브 캡션을 납품할 예정입니다. 현재 사용 기관을 선정하는 심사를 진행 중이고 1~2주 안에 결과가 나옵니다. 매칭이 완료되면 10월에는 공급 디바이스에 우리 제품을 설치해서 납품하게 됩니다. 조달청 예산으로 공공기관이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주면 에어사운드는 제품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제품은 장애인 직능단체나 국제교류원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입니다. 조달에서 인정받은 레퍼런스는 에어사운드 같은 기업에 매우 중요합니다.”
백민호 대표는 앞으로 장애인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일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혁신제품 스카우터의 추천은 우수한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지만 영업에 한계가 있는 지방 연구소기업의 페인 포인트를 해소해줬다. 지방 연구소기업은 사회적 약자의 페인 포인트를 해소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혁신조달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