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시대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의 이재영 교수는 현재가 필환경시대라는 주장에 동의할까?
“기업 환경에서 환경 분야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 이전에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코로나로 최근 2~3년 동안 기업과 사회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는데,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2021년부터 새롭게 적용된 파리협정과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기조에 맞춰 기업과 정부의 친환경 경영 및 투자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는 분위기입니다. 앞으로 정부와 기업에서의 환경 규제는 더욱 강해질 겁니다. 환경 문제에 선도적으로 나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회 분위기는 ESG경영 확산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이재영 교수는 ESG경영을 인간과 지구의 공동 생존전략이라고 설명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합한 용어죠. ESG나 ESG경영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지구와 인간이라는 공통분모가 반드시 등장할 겁니다. ESG의 핵심은 ‘지구’와 ‘인간’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나왔습니다. 이걸 사회적인 개념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지속가능성을 경영에 접목하려는 구체적인 시도가 나왔습니다. 사실 환경과 사회는 늘 등장한 주제였습니다.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구체적인 행동이 중요하니까 Governance(지배, 통제, 관리)를 추가했습니다. 기업에서의 Governance는 투명한 지배구조에 해당하겠죠. 그래서 환경과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중시하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경영 이론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ESG는 숫자로 구체화되는 재무적 기준이 아닙니다. 경영원칙에 비재무적 요소를 넣으려는 이유는, 그래야 지구도 살리고 인간도 살 수 있다는 사회적이고 지구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서, 환경을 강조하는 환경 분야가 만들어졌다. (당연하게도) 환경 분야의 사람들은 환경을 늘 강조했다. 그런데 이제는 환경 분야의 사람들이 아닌 지구의 모든 분야에서 환경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었고, 환경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ESG라는 개념을 설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재영 교수는 개념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념이 설정되면 구체적인 행동 방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구 환경의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지구온난화’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개발하여 전례 없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화석연료로 공장을 가동하고, 산을 깎고 숲을 밀어내서 대규모 농장을 설립했다. 경제적 풍요 이면에서 부작용이 꾸준히 쌓여갔다. 공업이 온실가스를 생산하고, 농업이 온실효과를 강화했다. 온실가스는 지구의 표면온도를 꾸준히 높여갔다. 1972년 서유럽의 미래 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은 지구온난화가 진행 중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1985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기구(UNEP)는 이산화탄소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1988년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만들어졌다. IPCC는 19세기 후반 이후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0.6도씩 꾸준히 상승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지구온난화는 폭염과 한파 등의 자연재해를 일으킨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했고, 태평양 저지대의 섬들이 물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호주 퀸즈랜드 연구팀은 1993년 이후 솔로몬제도의 해수면이 매년 7~10mm씩 상승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남태평양 작은 섬에 닥친 위기를 북반구에서 체감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2000년 NASA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지구의 새수면은 평균 23cm 상승했다. 매년 그린란드 빙하가 2m씩 녹아내리면서 500억 톤의 물이 바다에 공급되고 있다. 현재의 수준으로 지구 표면온도가 상승하면 2100년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도 물에 잠길 전망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 본격화한 시기는 1990년대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회의에서 세계 각국 정상들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를 확립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자발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에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국가 단위의 초국가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교토의정서의 유효기간은 2020년까지였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2015년 파리에 모여 새로운 협정을 체결했다. 산업화 이전과 대비해서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1.5도로 억제하겠다는 것이 파리협정의 주요 내용이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온실가스다. 온실가스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은 탄소다. 그래서 탄소사용을 줄여서 지구온난화를 막자는 전 지구적 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2050년까지 세계가 탄소중립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전 세계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공통의 과제가 되었다. 기업 역시 탄소중립을 실현할 방안을 경영에 담아야 한다. 바로 ESG경영이 그것이다. 이재영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앞서 EGS는 개념의 설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경영에 ESG를 도입해야 한다는 데 다들 동의했습니다. 그럼 경영에 ESG를 얼마나 도입하느냐?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정량적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ESG에 대한 정보 공시를 표준화해야 ESG경영이 완전히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올해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의 국제표준 개발을 위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설립될 전망입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세계적으로 ESG 정보공시의 규격화가 이루어지면 공시 기준은 확대되어 강화될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25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부터 공시가 의무화되고, 점차 공시 기준을 확대하고 강화해서 적용할 예정입니다. ESG경영을 도입하지 않으면 기업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겠죠.”
이재영 교수는 환경 문제를 놓고 국가간 경쟁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진국을 시작으로 ESG 투자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계에서 환경과 공생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향후 친환경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고 확대합니다. 이에 따른 규제가 만들어지거나 시행되는 분위기죠. 유럽연합에서는 2026년부터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예정이고,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약 40%의 탄소저감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올해부터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날 겁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뿐만 아니라 탄소중립으로 대표되는 청정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 정책 및 규제를 구체화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모든 경제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전 세계의 산업 환경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강화하는 환경기준에 맞춰 탄소나 온실가스 배출이 낮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 공정을 설계하는 기술 확보가 시급합니다.” 전 세계의 국가와 기업이 힘을 합해 친환경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며, 이재영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확보에 친환경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수출 위주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 먹고살 수 있는 거죠. 우리나라의 주요산업은 석유화학산업, 철강산업, 자동차산업인데, 모두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입니다. 유럽에서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고 했는데, 탄소 배출량이 관세처럼 부과됩니다. 이런 환경비용이 수출품의 가격을 높이면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경제성을 확보하면서 탄소 감축을 이루도록 대응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전기자동차 기술과 같은 친환경기술의 수준을 높이면 기업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이 함께 제고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전기자동차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제조하는 기업들의 경쟁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주도하던 시장이었는데, 대기업들이 참여하면서 핵심사업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제조업체들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급성장하는 추세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유럽 등 해외시장 진출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친환경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과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친환경 기술은 제조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재생에너지, 원자력발전, 폐기물의 재생에너지화 등의 친환경 기술력 확보도 중요하다고 이재영 교수는 강조했다. 국가간 교역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안해야 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은 앞으로 국가와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기준이다. 그런데 국가나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은 어떻게 환경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까? 친환경시대에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역할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나라에선 자금과 인력 부족 때문에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ESG경영 전담조직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SG경영이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향후 ESG경영의 영향력은 투자유치나 수출 등 기업 활동 전반에서 계속 확대됩니다.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업 운영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기업이 힘든 여건에도 ESG 경영기조와 맞물린 재생에너지 창출 및 탄소 절감 노력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보면, 친환경사업이나 친환경 기업구조를 형성하는 데에는 대처능력이 빠른 중소기업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기업에선 친환경 및 자연친화적인 원료를 이용한 제품생산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환경을 고려한 기술 및 제품 개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친환경 시대로의 전환에서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의 ESG경영 확대를 위한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정부는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산업계와 협력하면서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산업 업종과 규모별로 기업의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서 경제성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한 시나리오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조달청은 2021년 말부터 ‘녹색제품 공공조달 확대’를 위해 환경부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압니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녹색제품 등 친환경제품에 대한 판로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조달청은 오래 전부터 녹색 인증제품을 공공조달 해왔습니다. 친환경 제품에 선도적으로 나선 거죠. 조달청이 녹색기술 제품에 대한 구매 우선화, 가격 우대, 수의 계약대상 확대 등의 제도를 강화해서 친환경제품 및 기업 육성을 지원하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좀 더 발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달 선정 과정에 ESG경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혁신조달 정책이 ESG경영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기업의 혁신제품 판로확보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필환경의 시대, ESG경영의 시대는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기존 산업과 시장에 친환경산업이나 친환경 제품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산업과 경영환경, 시장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재영 교수는 그래서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형성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친환경 전환의 필요성은 대다수가 인정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해나 전문성 확보, 대응역량의 부족 문제가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친환경 시대로의 전환을 위해선 국가적 공감대 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 산업구조에서 친환경기술 적용을 위한 산업구조로의 변화는 사회 전반의 커다란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과 불편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변화 과정에 소외당하는 업종이나 분야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국가는 ESG경영을 위한 자율, 자유화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학계는 ESG경영을 위해 지속발전 가능한 기술을 연구하는 한편 전문가 교육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기업에선 ESG경영을 위한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최고경영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업이 친환경 인력의 수요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는 ESG경영의 감시자가 되고, 친환경 및 탄소중립의 조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국민 모두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 문제를 선택이 아닌 필수 항목으로 인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