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가 전 세계를 장악하면서 역설적으로 지구에 잠시 휴식이 찾아왔다고 한다. 짧게나마 산업 가동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하면서 일회용품의 사용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폐플라스틱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은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문제로 떠올랐지만 지금까지의 만족할 만한 대책은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물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자는 움직임에 힘이 실리는 건 사실이다. 실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줄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재활용에 동참하는 사람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쓰레기의 분리배출이 매우 잘 이루어지는 나라다. 재활용 용도로 배출되는 플라스틱은 세척 과정을 거친 후 그대로 또는 형태를 바꿔 다시 사용한다. 하지만 혼합 배출되는 플라스틱도 매우 많다. 음식물을 싸던 비닐이나 제품 포장용 필름 등이 그렇다. 가정이나 산업현장 등에선 아주 다양한 비닐 계통의 폐플라스틱들이 나온다. 이런 비닐계 플라스틱들은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뭉쳐서 태워버린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은 발열량이 높다. 그래서 화력발전소 등에서 소각하며 연료로 사용하곤 했다. 산업용 땔감은 RDF(산업폐기물), RPF(생활폐기물), TDF(타이어) 등으로 분류하다가, 2014년부터는 SRF(고형 폐기물 연료)로 통합했다. 명칭에 관계 없이 정부는 산업용 땔감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폐플라스틱을 산업용 땔감으로 재활용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과연 폐플라스틱의 소각을 재활용으로 볼 수 있느냐는 항의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소각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물질이 다수 배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진 않다. 필름이나 비닐봉지는 잘 분해되지 않아서, 묻어버리려면 매립지를 계속 넓혀가야 한다. 국토를 온통 쓰레기 매립지로 만들 순 없으니 폐플라스틱은 소각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던 것이다.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에 집진시설을 설치해서 대기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대기오염 물질의 생성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므로 한계가 있다. 독일이나 북유럽은 환경문제에 적극적인 선진국이다. 이들은 폐플라스틱에 아주 높은 열을 가해서 가스로 만든다. 우리나라보단 친환경적인 방법이지만 환경오염 물질 배출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중소 혁신기업인 에코크레이션이 해법을 개발한 것이다.
에코크레이션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직접 가열해서 태우지 않는다. 그 대신 밀폐된 공간에 넣고 열을 가해서 녹여버린다. 분자구조를 바꾸는 처리 방식이다. 플라스틱을 태우지 않기 때문에 공해물질 배출에서 자유로운 게 첫 번째 장점이다. 게다가 플라스틱을 열분해하면 원료였던 기름까지 추출된다. 두 번째 장점인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폐기물 처리지원금에 기름 판매 수익의 일석이조가 발생한다. 그런데 에코크레이션의 열분해 기술은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과거에도 열분해 기술 자체는 존재했다. 하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에코크레이션은 2010년 설립 이후 10년 넘는 연구개발로,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꿈의 기술을 현실화했다.
전범근 대표는 에코크레이션 창업 이전부터 환경장비에 관심이 많았다.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근무하면서 일찍부터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그는 페트병과 캔의 회수 기계(리버스 벤딩 머신)를 개발했다. 모든 물질은 각각의 물성치가 있기 때문에 떨어뜨렸을 때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이런 특성에 착안해 소비자가 빈 페트병과 캔을 기계에 투입하면, 데이터나 포인트 혜택을 제공하는 재활용품 수거기기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결국은 기술이 카피되면서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이후로도 전범근 대표는 계속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해 연구하다가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선진국의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현장을 돌아보던 그는 저온열분해 기술이 현실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14년 전, 그는 직접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하고 R&D에 착수했다. “에코크레이션을 설립하기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열분해기술 개발에 실패한 원인이 기계적 결함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온으로 플라스틱을 녹이는 기계를 만들어서 가동해보니, 추출한 기름이 굳어버리는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플라스틱을 열분해하는 과정을 거치면 원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원유는 한 가지 기름이 아닙니다. 가벼운 LPG, 더 가벼운 합성가스(Syngas), 신나 성분의 휘발성 기름, 벙커씨유(고유황중유) 성분의 기름, 왁스(파라핀) 등이 뒤섞인 기름인 거죠. 저온열분해 기술로 뽑은 기술을 정제해내지 못하면 굳어버리는 한계가 있던 겁니다. 우리나라는 정제기술이 뛰어난 나라지만 폐플라스틱에서 얻은 기름을 대형 정제시설에서 분류할 순 없습니다. 규모가 다르니까요. 해외에서 저온 열분해기술 개발이 성공하지 못한 건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범근 대표는 산업현장과 학계에 있는 인맥과 함께 해결책을 찾았다. 저온열분해 기술은, 섭씨 400도 미만의 열로 플라스틱을 녹여서 액화한 다음 기체로 만들고 일정 성분을 걸러낸 후 다시 차갑게 식혀 액화하는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유 정제는 원래 원유를 끓이면서 온도별로 서로 다른 성분의 기름을 분류해서 추출하는 기술이다. 에코크레이션도 온도를 달리해서 기름을 성분별로 분류하려고 시도했지만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촉매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과거의 한계를 넘어선 성공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하면 기름 이외 성분도 나온다. 플라스틱을 만들 때 첨가된 성분이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 가운데 하나인 PVC는 염화비닐을 주성분으로 한다. 염화수소를 첨가해서 만들기 때문에 열분해 이후 염소가 생성된다. 염소화합물이 산소와 결합하면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된다. 열분해 과정에서 염소나 황 등의 부산물 발생을 제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친환경 기술이 되는 것이었다. 전범근 대표는 다시 답을 찾는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하면 약 3,000ppm의 염화수소가 발생하는데, 에코크레이션은 그 수치를 200ppm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 소모는 피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 3년 이상의 R&D가 필요했다.
10년 가까운 고난의 여정 끝에 맺은 결실이었다. 미로와 같던 폐플라스틱 처리 문제에 답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환경부에서 중소기업의 혁신기술을 인정하려면 검증이 필요했다. 특히나 저온 열분해기술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과거에도 개념은 존재했지만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데다, 질이 떨어지는 기름이 사고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과거 후진국에서는 소각기를 개조해서 저온 열분해기기 유사장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온 기름을 시멘트공장이나 벽돌을 구울 때 사용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막기름 안에는 다양한 성분의 기름이 혼재되어 있다. 막기름 속의 파라핀 성분은 배관 안에서 굳으며 쌓였다. 배관 내부는 좁아지면서 압력이 증가했고, 용접이 부실한 부위에 크랙을 일으켰다. 그리고 폭발사고로 이어졌다. 2018년, 에코크레이션은 환경부의 과제를 수주해서 혁신기술을 검증했다. 발전소를 지니고 있는 지역난방공사와 함께 과제를 진행하고, 추출한 기름은 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분석해서 신뢰도를 확보하자는 조건이었다. 과제 기한은 3년이었지만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모든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충북 옥천과 전남 광주에 설치한 폐플라스틱 열분해 플랜트는 기대를 상회하는 실증 데이터를 제공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산업용 기름까지 얻을 수 있는 에코크레이션의 기술은 혁신적이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을 상용화하려면 다시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지자체의 벽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시설의 도입 허가를 내줄 수 있는 기관은 지자체인데, 쓰레기를 자신의 지역에서 처리하려는 지자체는 찾기 힘들다.
환경부는 플라스틱 열분해 TF를 구성해서 지자체를 설득했다. 앞으로 지자체 밖으로의 폐기물 이동은 법적으로 금지될 전망이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환경부에서 80%의 사업비를 부담하니 플라스틱 열분해 시설을 설치하려는 지자체는 지원하라는 공고를 냈다. 18개 지자체가 신청했고, 강원도 횡성군청, 경상도 구미시청, 인천 서구청, 강원도청의 4개 지자체가 시범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에코크레이션의 폐플라스틱 열분해 설비가 이들 지자체에 설치될 것이다.
에코크레이션은 ‘2021년 환경기술개발 우수성과 20선’에 선정되며 신기술인증(NET)도 통과했다. 환경플랜트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신기술인증을 받은 것이다.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처리에 열분해기술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현재의 열분해처리 비중은 0.1% 수준인데 2025년까지 3.6%, 2030년까지는 30% 수준으로 높이는 게 목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에코크레이션은 조달시장에 참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혁신조달이 정답이었다. 2022년 에코크레이션은 혁신조달을 통해 조달시장에 진출했다.
에코크레이션의 혁신기술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분명하다. 폐플라스틱을 처리하면 환경부에서 톤당 약 17만원의 폐기물 처리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루 100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하면 1,70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것이다. 100톤에선 약 6만 리터의 기름이 만들어지는데, 현재 열분해유의 리터당 가격은 약 600원 수준이다. 기름 판매대금으로 다시 3,600만원의 추가수익이 생긴다. 100톤 처리시설을 설치하면 환경을 보호하면서 매일 5,000만원이 넘는 이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에코크레이션의 신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환경성 산하 도시연구소의 박사급 직원들이 에코크레이션의 플랜트를 확인했다. 이들은 직접 가지고 온 장비로 5박 6일간 플랜트를 가동하며 실증했다. 그리고 5대의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에서도 에코크레이션의 플라스틱 열분해 플랜트 6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올해 에코크레이션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1번기를 설치한 후 애틀랜타와 잭슨빌 등으로 납품한다. 그렇다면 에코크레이션의 혁신기술이 카피될 위험성은 없을까? 전범근 대표는 기계 자체의 복제는 막을 수 없다면서도 독자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기계를 따라 만드는 데에는 4~5년 걸릴 겁니다. 하지만 촉매 제조기술은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에코크레이션은 두 가지 촉매를 직접 개발했습니다. 플라스틱에 포함된 유해물질을 제거하고, 분리된 기름을 추출하는 핵심기술이 바로 촉매에 있습니다.”
쓰레기 재활용 부문에서 에코크레이션은 뜨거운 감자다. 많은 대기업이 에코크레이션의 혁신기술에 투자하려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에코크레이션은 먼저 SK그룹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 인천 청라에서 연간 100대 이상의 열분해 플랜트를 제조할 수 있는 공장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2020년 에코크레이션의 매출은 11억원이었다. 연구개발비중이 높아서 영업손실은 19억원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앞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 매출은 5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코크레이션은 내년 국내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다. 용도가 다한 플라스틱 처리에는 답이 없었다. 에코크레이션은 그 답을 내놓았다. 전범근 대표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기름이라고 해도 연소할 때에는 환경오염이 어느 정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2023년 이후로는 수소 등 무공해 연료를 제조하는 기술 개발에도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에코크레이션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혁신을 거듭하는 친환경 기업이다. 혁신조달이 에코크레이션 혁신을 한층 가속화하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