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어느 산업에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한국수력원자력㈜에선 안전이 최우선 덕목을 넘어선다.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고, 검증에 검증을 되풀이한 다음에도 다시 몇 번씩 안전을 확인해야 하는 기업이 한국수력원자력㈜다. 가장 보수적으로 돌다리를 수백 번 두드려야 하는 기업 특성상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어도 선뜻 사용하기 어려운 곳이 한국수력원자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수력원자력㈜는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높은 혁신조달 구매실적을 올렸다. 2001년 창사 이후 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하며 국가경쟁력을 향상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온 한국수력원자력㈜의 전통이,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업이다. 24기의 원자력발전소와 35기의 수력발전소와 1기의 소수력발전소, 16기의 양수발전소, 15기의 태양광발전소와 1기의 풍력발전소를 운영하며 대한민국 전력의 27%를 생산하고 있다. 약 28,590MW의 설비용량과 10조원의 매출액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수력원자력㈜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하게 해준다. 거대한 숫자를 아니어도 한국수력원자력㈜는 대한민국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가 아니라면 우리 주변의 전기 1/4 이상이 사라지는 것이니, 대한민국의 ‘현대적’인 면모도 1/4 이상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늘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발전시설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이는 국가기간산업인 발전시설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발전시설은 함부로 공개할 수 없는 국가기간 설비다. 원자력 발전시설은 더욱 그렇다. 작은 문제가 생겨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시설의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해야 하고, 조그마한 부품 하나도 확실하게 검증된 제품만을 정확한 방식으로 세팅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수력원자력㈜는 꾸준히 혁신을 거듭해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철저하게 검증하며 제품을 국산화하고 성능을 고도화하며 대한민국의 원자력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는 우수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왔다. 2001년 창사 이후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노력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전통으로 발전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정재훈 대표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출신이다. 그는 대한민국 산업기술의 발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취임 이후 기회가 날 때마다 앞장서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원전 생태계에서 우수한 중소기업은 튼튼한 뿌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늘 솔선수범하고 나섰다. ‘찾아가는 CEO 간담회’는 정재훈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분야별로, 사업별로, 안건별로 그는 다양한 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 대표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직접 면담 간담회가 어려워지자 정재훈 대표는 비대면 화상 간담회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22년 4월이면 정재훈 대표의 중소기업 간담회는 100회차를 넘어설 전망이다. 간담회와 별도로 CEO 직접 면담도 진행해오고 있다. 간담회에서 털어놓기 힘든 중소기업 CEO의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 정재훈 대표는 130개사 이상의 중소협력기업 대표를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대표가 이렇듯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한국수력원자력㈜ 전체가 중소기업 상생협력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에는 한수원형 SRM 시스템을 구축해서 협력기업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수력원자력㈜ 조달처 자재총괄부의 최우영 차장은 우수한 중소기업 지원을 체계화한 것이 한수원형 SRM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SRM은 공급자 관계 관리(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입니다. 원전 생태계의 공급 망에는 다양한 공급자가 존재합니다. 이들 가운데 핵심적인 기술기업이 존재합니다. 한수원형 SRM은 핵심공급사에 정책적인 지원을 집중하도록 체계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공급자를 카테고리별로 분류한 후 SRM 공급자를 매년 평가합니다. 우수한 공급자에겐 지원을 늘리고, 낮은 평가를 받은 공급자에겐 페널티를 주는 게 아니라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한 컨설팅을 제공합니다. 동반성장하기 위한 경영지원체계를 구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시스템을 구축한 후 지금은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9년 혁신조달 제도가 만들어지고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새로 도입되는 제도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입장은 복합적이었다. 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하기 위한 강력한 전통이 있기 때문에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 구매는 새롭지 않았다. 최우영 차장은 전통적인 공공조달제도의 특성을 혁신조달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수력원자력㈜가 사회적 약자와 동반성장하기 위해 공공조달을 적극 활용해왔으며, 장애인기업 생산품, 사회적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제품, 여성기업 제품, 중증 장애인 생산품, 중소기업제품, 기술개발 제품 등의 적극 구매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사회적 약자 기업이나 여성기업 등을 배려해서 공공조달의 높은 문턱을 낮추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많은 중소기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개발하는 데까지는 어떻게든 가지만 그 이후가 진짜 문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품을 테스트해서 상품성을 높이고, 판로를 개척해서 시장에 나가기가 정말 힘들다는 거죠. 공공조달은 이 어려움을 해소하며 마중물 역할을 해줍니다. 혁신조달도 혁신적인 제품의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진작 이런 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는 공공구매를 담당하는 조달처를 혁신조달의 전담부서로 지정했다. 2020년, 1년간 혁신조달제도를 운영해본 한국수력원자력㈜는 제도의 확산을 위해서 전사적인 수요발굴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유관부서 담당자들을 하나로 엮은 전사 혁신수요 발굴TF를 구성했다. 전담부서인 조달처를 위시해서 상생협력처, 기술혁신처, 디지털혁신추진단 등이 TF에 참여했다. 코로나의 대유행 때문에 업무는 필요할 때마다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전 직원에게 혁신조달 정책의 취지와 활용 방안을 알리는 교육과 홍보도 함께 진행했다. 조달연구원을 초청해서 혁신조달 상담과 교육도 병행했다. 혁신제품의 온라인 홍보 플랫폼을 운영했다.
그런데 한국수력원자력㈜에는 혁신제품을 선뜻 구입할 수 없는 사정도 있었다. 원자력발전시설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검증된 안전이기 때문이다. 최우영 차장은 한국수력원자력㈜만의 독특한 고민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혁신조달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면에 한국수력원자력㈜만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혁신제품은 상용화되기 전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핵심사업은 원자력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전에는 안전성 문제 때문에 상용화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0.0001%의 오류나 기계 결함만 있어도 원전에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시제품을 원전 안에 설치할 순 없는 거죠. 960여 가지 혁신제품 가운데 정말 뛰어난 제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혁신적인 제품이라도 원전 내부에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조달처 자재총괄부 김기연 부장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원전산업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국민들에게 잘 노출되지 않은 것도 특성입니다. 이런 B2B 기업특성 때문에 한국수력원자력 공사에서 혁신제품을 구매해서 일반시장에 전파하여 마중물 역할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원전산업 제품을 혁신장터에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원전산업용품을 구매해서 해당 제품의 일반 시장 인기를 견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김기연 부장은 이러한 한계 때문에 한국수력원자력㈜의 혁신조달은 혁신제품의 일반시장 마중물 역할이 아니라 원전용품 국산화에 초점을 맞추는 게 옳지 않을까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코로나의 특수상황 때문에 출입구에 설치하는 체열 측정장치 등의 혁신제품을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매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수력원자력㈜가 원전산업의 특수성 안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에서 원전용품을 국산화하면, 한국수력원자력㈜가 혁신제품 지정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죠. 중장기적으로 한국수력원자력㈜는 패스트트랙3 제품에 집중해서 중소기업 제품의 에너지기술마켓 등록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어 혁신조달 정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원전용품 국가우수연구개발제품(패스트트랙1)이나 혁신시제품(패스트트랙2)은 구조나 용도가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크다. 한국수력원자력㈜는 원전 특성상 전혀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는 모험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안전성이 확보된 원전용품이 국산화하면, 해당 제품이 패스트트랙3에서 혁신성과 공공성을 인정받아 혁신장터에 등록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복합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수력원자력㈜는 혁신조달에 적극 협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부에서 지정한 혁신조달 구매목표액은 2020년과 2021년 각각 39억원과 74억원이었다.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는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자체 목표를 도전적으로 설정했다. 2020년의 한국수력원자력㈜는 47억7천만원의 자체 목표를 설정하고, 실제로는 58억원의 구매실적을 올렸다. 정부 목표액 39억원 대비 148% 초과달성한 구매 실적이었다. 2021년에는 전년 달성 실적을 훨씬 웃도는 82억6,000만원을 자체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175억 원의 최종 구매액을 달성했다. 이는 목표액 대비 235% 초과달성한 수치다.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원전제품은 함부로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입장이다. 그런데 어떻게 235% 초과달성의 높은 구매실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전사적으로 혁신구매 발굴에 나선 결과였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는 67개 기업의 혁신제품을 구매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패스트트랙1과 패스트트랙2, 패스트트랙3를 망라하고 있다. 코로나 정국의 특수성 때문에 패스트트랙2의 혁신시제품 가운데는 방역용품이 많았다. 한국수력원자력㈜는 퓨리움의 스마트IoT 에어샤워, 코비플라텍의 플라즈마 공기살균청정기, 테스토닉의 먼지흡입매트, 미래에스비의 신발바닥청소기 등을 구매해서 방역을 강화했다. 그 결과 한국수력원자력㈜의 모든 발전소와 발전 장비 필수인력 가운데 신종코로나 감염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가 우수연구개발제품을 제품화한 패스트트랙1에서는 휴대용 안티-드론 건 67대를 구매했다. 드론은 핵심적인 미래기술로 각광받지만 무기로 전용될 위험성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처럼 중요한 국가 기간시설은 드론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적대세력이 국가 기간시설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드론 공격을 해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공중에서 접근하는 드론은 위험천만하다. 실제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원전 주변지역에 총 27건의 드론이 등장해서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한국수력원자력㈜는 패스트트랙1의 휴대용 안티-드론 건을 도입해서 원자력발전소에 드론방호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수력원자력㈜는 패스트트랙1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향상시킬 만한 제품을 적극적으로 탐색했다. 세이프웨이의 산업용 추락보호 에어백이나 제이오텍의 인화성 위험물 보관함이 그런 제품에 해당했다. 한국수력원자력㈜는 혁신조달 장터에서 이들을 구입해서 산업안전 관리 수준을 높였다.
패스트트랙3 제품의 개발과 인증, 구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모래 성분의 개흙은 보통 ‘뻘’이라고 부른다. 뻘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생물은 발전설비에 위협적인 요소다. 취수구 펌프의 부품손상이나 부식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는 ‘뻘 퇴적높이 측정 수중점검로봇’ 개발을 협력연구개발과제로 선정하고, 개발은 물론 인증과 에너지기술마켓을 통한 혁신제품 등록과 구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로봇은 앞으로 퇴적된 뻘의 위치와 높이를 모니터링하며 뻘을 적기에 제거해서 발전설비의 안전성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다. 효율적인 정비계획 수립과 장기 개선 대책 수립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최우영 차장은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민은 안전에서 시작해서 안전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혁신조달이란 무엇인가부터 고민했습니다. 혁신조달은 ‘공공구매를 통해 혁신제품을 도입해서 대국민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입니다. 그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대국민서비스를 개선하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대국민서비스를 개선하려면 결국 기업 본연의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수력원자력㈜는 원자력발전의 안전한 유지관리가 업의 본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혁신조달을 통해서 원전 안전을 향상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여기에 부합하는 제품을 찾았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깊이 있는 고민과 상생협력의 전통은 시너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놀라운 혁신조달 구매성과를 낳았다. 조달처의 박완국 처장은 한국수력원자력㈜가 올해 더 좋은 성과를 올릴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올해에는 조달청과 협업해서 중소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4월에는 조달청과 최고책임자간 협약을 체결해서 중소기업의 판로개척부터 해외시장 진출까지 최선을 다해 도우려고 합니다. 공공부문에서 선도적으로 혁신제품을 구매하고 장려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이제 곧 100회를 맞이하는 한국수력원자력㈜ CEO간담회에서 대표님은 중소기업 해외진출 지원방안의 업그레이드에 대해 언급할 계획입니다. 이제 한국수력원자력㈜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세계로 나아가 대한민국의 내일을 여는 데 가장 열심히 돕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