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공공기관, 공기업에서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갖추어야 한다. (공공) 조달은 이런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일을 가리킨다. 조달 자금은 국민의 혈세에서 나온다. 따라서 조달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투명한 계약 과정을 거쳐 구매하도록 정하고 있다.
조달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구매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조달을 정책적으로 활용한다. 특정 제품을 공공에서 구매해서 관련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 기업을 지원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스웨덴은 공공 조달의 막강한 구매력을 국가발전 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정보통신기술이 고도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서로 다른 산업들이 융복합하면서 모든 사회 분야에서 전례 없이 빠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혁신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도의 틀 안에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 조달이라는 국가 제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혁신지향 공공조달은 급속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전략적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서 사회에 안착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경남도청의 최수영 사무관은 적극행정으로 혁신지향 공공조달 제도를 경상남도에 확산시켰고, 제도가 지향하는 공공성의 혜택을 지역과 도민에게 돌리는 성과를 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에는 늘 그렇듯 혁신조달 제도를 처음 접한 당시의 최수영 사무관도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당시 저는 회계팀 소속이었습니다. 회계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계약의 공정성입니다. 정해진 공정절차에 따라 제품을 조달해야 하는데, 혁신조달은 수의계약으로 진행됩니다. 또, 혁신제품은 사전에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지방정부 특유의 애로사항도 있습니다. 중앙정부에 비해 지방정부의 예산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실제 제품을 사용할 부서에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 구매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수영 사무관은 혁신조달의 효과에 큰 기대를 품었다.
“공공조달 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 그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어 가고 있음에도 현재 시장에서 인정받은 제품만을 구매했습니다. 혁신제품의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국민이나 기업은 좀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원하는데, 이를 충족하려면 혁신제품을 선도적으로 구매해서 기술혁신과 성장을 지원하고, 최적의 구매로 국민세금을 절감하고,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혁신을 지향하는 공공조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혁신조달은 기존의 관행을 탈피하고 이러한 요구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들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경상남도 기업의 혁신제품을 초기에 도입・육성하여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선도해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방정부의 예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남도청은 경상남도 혁신기업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예산 부담이 적은 테스트베드 수행에 적극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2020년 6월, 경남도청은 경상남도 혁신지향 공공조달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혁신조달 생태계 구축, 혁신수요 발굴 및 공공구매 확대, 혁신조달 교육 홍보 강화를 3대 정책과제로 설정했다. 혁신조달 생태계 구축은 경남도청 회계과를 혁신조달 정책의 전담부서로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팀장을 맡은 회계과의 최수영 사무관(당시 계장)은 당시 할 수 있는 업무가 많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혁신지향 공공조달의 2020년 업무는 대부분 하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경남도청의 예산은 책정된 대로 상반기에 조달물품을 구매해버린 상황이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혁신조달은 회계과에서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곧 도 TF를 구성했습니다. 2020년에는 경상남도의 시제품을 혁신조달에 최대한 많이 등록하는 데 역점을 뒀습니다. 그리고 조달청의 예산 지원을 받는 시범구매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경남도청의 혁신지향 공공조달 추진 TF는 총괄반, 기업지원반, 수요발굴반의 3개 반 11명으로 구성했다. TF의 팀장은 최수영 계장이 맡았다. 이들은 혁신수요 발굴 및 공공구매 확대를 위해 기업 혁신시제품 등록 지원단을 운영하고, 혁신조달 성과목표 달성 체계를 마련했다. 혁신구매 목표제와 혁신제품 사전검토 확인제, 혁신시제품 성공사례 발굴 등이 경남형 혁신조달 성과목표 달성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혁신조달의 교육 홍보 강화는 경남도청의 2020년 3대 정책 과제 가운데 하나다. 최수영 사무관은 2020년을 혁신조달의 토대 구축에 집중했던 해로 기억한다. 2020년 7월에는 혁신조달을 확산하기 위해 경남도청 TF와 경남지방 조달청, 시군 업무 담당자, 경남 테크노파크와 마산의료원 등의 출자 및 출연기관, 혁신시제품 보유기업을 한자리에 모은 워크숍을 진행했다. 9월에는 경남도청, 경남지방 조달청, 경남 테크노파크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서 도내 혁신지향 공공조달이 활성화할 토대를 만들었다. 2020년 10월과 2021년 1월에는 진주혁신도시의 11개 공공기관에 혁신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해달라고 요청했다. 진주혁신도시에는 4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는데, 우수하고 공공성 있는 제품이나 기술을 갖춘 기업은 혁신시제품 등록을 추진하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직접 얼굴을 맞대기 힘들 때에는 온라인으로 연락하면서 최수영 사무관은 도내 관련 기관과 기업을 돌았다. 특히 경상남도 소재 혁신기업을 적극적으로 살펴봤다. 어떤 기업이 어떤 혁신제품을 개발했는지 확인했고, 경상남도 안의 지자체 또는 공공기관에 수요가 있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경상남도 기업의 혁신제품 리스트를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구매해달라고 홍보했다. 그 결과 2020년 하반기에는 패스트트랙1에 경상남도 기업 제품이 상당수 선정되도록 하는 성과를 올렸다.
2021년이 되자 경남도청은 3대 정책과제를 다시 설정했다. 혁신조달을 보다 본격화하기 위해서였다. 경남도청과 최수영 사무관은 2021년의 3대 정책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첫째,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컨설팅을 지원한다. 경남도청은 경상남도의 혁신기업과 경남 테크노파크, 경남조달청 등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연결망을 구축하고, 컨설팅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혁신시제품의 등록을 확대하고, 수요과제 발굴 컨설팅도 지원하기로 했다. 혁신조달 공급자제안형 발굴 협력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에도 최선을 다했다.
둘째, 판로 확대 및 목표를 설정한다. 경남도청은 혁신조달 TF를 구성하고, 도내 공공기관을 돌면서 지역 혁신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자고 설득했다. 그리고 어떤 제품을 구매하려 할 때에는 경상남도 기업의 혁신제품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도록 하는 ‘혁신제품 사전검토 확인제’를 시행했다. 도와 시군별로 구매목표제를 실시하고, 도전적과제 공모 및 혁신제품 시범구매사업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했다.
셋째, 교육과 홍보를 강화한다. 최수영 사무관은 경상남도가 혁신조달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익숙해지도록 알리고 또 알렸다. 시군 공무원 대상의 온라인 교육과 간담회를 열었고, 기업인과 경제인을 초청한 간담회 형식의 워크숍도 개최했다. 특히 혁신조달 제품을 만들어낸 기업 대표의 간담회는 좋은 반향을 얻었다. 혁신조달의 성공사례를 발굴하고 공모전 참여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SNS를 활용한 혁신조달 홍보 활동도 계속 진행했다.
2021년 4월, 경남도청은 좋은 아이디어와 혁신 기술력을 보유한 도내 기업을 발굴해서 시군 단위와 매칭하는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혁신제품과 혁신기업에 대한 홍보를 계속하자 시군 단위의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도 혁신조달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최수영 사무관은 ‘영업하듯 발로 뛰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웃었다. 경남도청의 문화재 안내판 교체사업 관련 부서인 가야문화유산과는 안내판 교체시기가 된 함양군에 경남 기업의 혁신제품을 소개했다. 백마산업안전의 ‘다방향 위치전환기술의 주물부식 문화재안내판’은 매설블록을 이용한 이중고정기술을 적용하여, 안내판이 노후화되어도 본판만 교체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교체시기에 폐기물 발생이 적어 친환경적이고, 고정 장치를 중심으로 회전하여 편의성을 높였다. 주물 소재의 표면처리 방식도 고풍스러워 문화재와 잘 조화된다.
도로 관련 실과에는 로드라이트의 카탈로그를 가지고 방문해 혁신제품을 설명했다. 역시 경남 기업인 로드라이트는 90도 이상의 각도로 빛이 방출되지 않는 컷오프 방식의 LED 등을 개발한 업체였다. 눈부심은 예방하면서 전력 소모는 적기 때문에 공공성이 높은 제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해양수산 부서에는 적조방재 고도화 시스템과 잔교 등 20개 제품을 소개했다. 바다와 접한 경남 고성, 통영, 거제, 남해군은 부잔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혁신제품 시범구매 사업 참여 안내가 순조로웠다.
경남도청과 최수영 사무관의 설득은 명료했다. 제품의 혁신성과 공공성을 설명하면서, 지역 기업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지자체와 공공기업이 점점 혁신조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경상남도의 지역 기업은 큰 혜택을 받았다. 로드라이트의 LED 등은 2020년 5월에 혁신제품으로 지정되었다. 경남도청에선 2020년에 2억5백만 원 상당의 LED 등을 구매했고, 2021년에는 그 금액에 17억9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구매 실적은 고스란히 혁신기업 성장의 마중물이 되었다.
최수영 사무관과 경남도청은 가능하다면 경상남도 혁신기업 제품을 먼저 구매하려 했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혁신제품을 배타적으로 대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경남도청은 다양한 실증사업 참여를 지원했고, 웃샘의 음압캐리어 테스트베드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웃샘의 음압캐리어의 테스트베드 지자체로 선정되었다. 충청북도의 의료기기 업체인 웃샘은 격리가 필요한 환자 또는 의심자의 이송용 음압캐리어를 국산화해서 혁신제품으로 지정되는 데 성공했다. 경남도청은 2020년 11월 17일부터 2021년 3월 2일까지 웃샘 음압캐리어 36대를 경상남도 소방본부에 비치하여 실증을 진행했다. 외국산 음압캐리어의 1/4 가격에 편의성 또한 뛰어난 웃샘 제품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테스트베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남도청은 3월 31일 38대의 음압캐리어를 구매해서 경남 소방본부에 배치했다.
감환경디자인의 로켓 발사형 인명 구조 튜브 ‘LIFE GUARD 100'도 바다와 접한 경상남도에 유용한 혁신제품이다. 바다에 빠지는 익수사고가 발생할 경우 인명 구조 튜브를 정확하게 던져주기는 쉽지 않다. LIFE GUARD 100은 발사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최대 60m 거리의 익수자에게 로켓 튜브를 전달할 수 있다. 로켓 튜브는 물에 닿으면 5초 안에 가스가 자동 공급되면서 익수자가 의지할 수 있는 부력기구로 변한다. 2020년 7월 9일, 경남도청은 시군에 보조금 7,200만원을 교부해서 혁신제품 구매를 지원했다. 양산, 고성, 남해, 합천은 LIFE GUARD 100을 해안에 배치하여 혹시 모를 도민의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경남도청과 최수영 사무관의 노력은 혁신조달이라는 낯선 제도를 시군 단위에까지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게 만들었다. 2020년 경남도청의 혁신조달 구매액은 5억1,500만원이고, 도청과 시군 단위 지자체 구매액을 모두 합하면 15억 8,700만원으로 늘어난다. 발로 뛰며 경상남도의 혁신조달 이해도를 높인 2021년에는 그 수치가 크게 늘어났다. 6월 상반기에 이미 전년도 혁신조달 구매액을 넘어서는 구매 성과를 올렸다. 2021년 6월의 도 및 시군 단위 구매액 합계는 16억1,400만원이고, 도 자체도 혁신제품 구매에 10억900만원을 사용했다. 연말 최종구매액은 208억원에 이른다. 혁신시제품 등록건수를 기준으로 삼아도 경남도청의 꾸준한 발전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경상남도 기업의 혁신시제품 등록기업은 1개사에 지나지 않았다. 2020년 그 수치는 10개로, 2021년에는 18개로 늘어났다. (18개 기업 가운데 3개 업체는 이후 경상남도에서 다른 지자체로 소재지를 옮겼다.)
최수영 사무관은 혁신시제품 등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이야기한다. “경남도청은 지역 소재 기업이 혁신시제품 등록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혁신제품 등록지원 컨설팅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경상남도는 혁신제품 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육성하고 있으며, 혁신제품을 선도적으로 구매하는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혁신조달을 통해서 공공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도 기업의 지원과 육성을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혁신지향 공공조달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첫째, 외국산 저가 공세에 대응하여 국산 친환경 전기버스의 확대 보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도내 전기버스 산업을 육성하려는 것이죠. 둘째, 공공기관 핵심 소프트웨어를 외국산 제품으로 구매하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국산제품 사용검토 의무화를 시행하였습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판로를 지원하려는 거죠. 셋째, 조선기자재의 구입 역시 해외의 독점적 업체와의 반복적 계약을 탈피하려 합니다. 관공선 설계에 착수하면 국산 기자재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했습니다. 혁신조달은 혁신제품을 많이 등록하고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행적으로 외국산 제품을 선호하여 구매하던 것을 국산제품을 발굴해서 대체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외국산 저가 공세에 대응한 국산 신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해서 육성해야 경상남도와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수영 사무관은 혁신조달이라는 낯선 제도를 지역 현안과 기업에 맞춰 구체화했다. 경상남도의 지자체와 기업이 힘을 합해 혁신조달이라는 제도를 추진하고, 혁신조달이라는 제도의 수혜가 경상남도의 공공서비스 향상과 지역 기업 육성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경남도청의 성공사례는 최수영 사무관이 발로 뛰며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경상남도가 하나 되도록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수영 사무관은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혁신조달은 적극행정이며, 공공서비스의 혁신이다. 최수영 사무관이 그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