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_이영달 교수

지역혁신 생태계 조성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

이영달 교수는 혁신과 기업가정신 그리고 글로벌 경영전략 연구의 권위자로 뉴욕과 한국, 아시아 각국을 넘나들며 혁신생태계 조성정책과 전략을 자문하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서도 상근 자문위원을 맡아 우리나라의 지역혁신 생태계 정책을 기획했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세계의 혁신 현황과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혁신조달의 역할을 그에게 물었다.

세계화를 가속하는 디지털 대전환

이영달 교수는 현재의 세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지난해 기업가 리더십 관련 글을 쓰면서 ‘물리적으로는 제한적이지만, 가상적으로는 더욱 하나가 된 세상(A Physicaly Exclusive & Virtualy Connected World)’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지구촌은 코로나 대유행 이전보다 더욱 가깝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화된 결과입니다. 리쇼어링(reshoring, 제조업의 본국 회귀)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조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는 데는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건비를 중심으로 한 비용절감, 그리고 둘째는 현지 및 지역 시장개발 차원입니다. 일견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중국과 아시아 지역의 제조공장을 철수하는 흐름이 만들어져 ‘리쇼어링’이 빠르게 전개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전통적인 ‘리쇼어링’과는 다릅니다. 디지털 기반의 제조 및 공급 인프라 재구축으로 해석하는 게 기업현장의 관점에서 보다 실제적인 해석이라 강조하고 싶습니다. 독일의 특장차 제조업체들은 중국에 두고 있던 부품 제조 및 공급 기지를 독일이 아닌 스웨덴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2017년 1월 독일과 스웨덴 양국은 ‘독일-스웨덴 테스트베드 인더스트리 4.0(German-Swedish Testbed Industrie 4.0)’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첫 번째 협력 프로젝트로 특장차 부문의 스마트 팩토리 및 실증 실험실을 스웨덴에 설치했습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국제간 스마트 팩토리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많기 때문에 전통적인 ‘리쇼어링’이라 표현하기에는 정합성이 충분치 못합니다. 이제 인건비 때문에 제조시설을 국제적으로 이동시키는 경우는 노동집약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일부 제조업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리쇼어링’과 달리 디지털 기반 환경과 시장기회가 함께 있는 국가나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ESG가 강조되는 추세 역시 전통적인 ‘리쇼어링’과 다른 제조업의 사업장 이동 현상을 만듭니다. 국제적으로는 유럽에서 ESG 강조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환경, 근로자 인권 등이 강조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개발할 수 있는 시장 기회가 없으면 더 이상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활동을 전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디지털 전환 기반과 기업 활동 관련 정책환경이 더 좋은 국가에 제조 기반을 두는 것이 더 생산적인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국제경제 질서는 디지털 전환 기반과 기업 친화적 정책 환경을 가진 국가 및 지역으로 기업들이 그 기반을 새롭게 두고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영달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보다 ‘디지털 대전환기’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지역이나 국가 간 물리적 이동에 제한이 생겨도 디지털 전환으로 세계의 연결성은 더욱 강화된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그는 디지털 전환기의 국가 또는 지역 간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이영달 교수는 2022년 여름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초격차’ 이 두 표현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20년 기준 서울시와 부산시의 GRDP(지역내총생산)는 각각 440조 원과 92조 원입니다. 4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부산시 소재 기업 매출액의 합계는 서울시 강남구 소재 기업 매출액의 55%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구 1만 명당 서울시는 대기업이 2.44개이고, 부산시는 0.76개입니다. 기업 당 평균 매출액, 종사자 1인당 매출액 등 기업 생산성과 기업 고용력도 평균적으로 3배의 격차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역 간 불균형은 한계수준을 넘었고, 그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영달 교수는 이러한 격차 발생이 전 세계적인 추세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혁신의 영역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전에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개발 그리고 이를 상업화 및 산업화하는 일련의 과정과 흐름들이 순차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혁신은 공진화(coevolution)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개발되면서 이것이 즉시적으로 상업화 및 산업화되고, 이 과정에서 또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개발됩니다. 이 과정들이 동시적이고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이를 산업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이나 대학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구심력이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혁신 생태계 내에서 활동하는 개인이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개인 및 기업 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현상이 발견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혁신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 기업, 대학과 그렇지 못한 그룹 간 격차가 매우 큽니다. 지역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기업 영역에서는 글로벌 혁신이 가능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대학에서는 과학기술 기반 혁신 생태계에 기반 하는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 간 격차는 이전에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혁신으로 발생한 ‘그들만의 리그’와 ‘초격차’ 현상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국가 차원의 경쟁력을 결정합니다.

혁신역량이 뛰어나 부와 지식 등을 결과적으로 과점하는 기업이나 집단이 있을 때, 이를 강제거나 제약하여 ‘결과의 평등’으로 귀결되는 정책적 접근을 취한다면 그 국가나 지역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혁신활동을 열심히 전개하는 기업이나 집단은 계속해서 열심을 다 하도록 장려하고, 혁신에서 소외되거나 낙오되는 기업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이들의 혁신역량을 고도화 할 수 있는 입체적인 정책 활동을 통해 국가나 지역 전반이 혁신 지향적으로 그 흐름이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번 인수위 지역균형특위에서 지역혁신 생태계 관련 국정과제를 여러 측면에서 기획하고 반영한 주된 이유입니다.”

혁신과 변화하는 산업생태계

이영달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 그는 기업가정신이란 자신의 배경이나 보유자원에 관계없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일련의 사고와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기업가정신은 ‘기회 추구의 장’이기도 하다. 이는 혁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기업가정신의 맥락에서 보면, 혁신은 기회추구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려면 무엇인가를 더 낫게 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전자를 ‘생산적 혁신(productive innovation-something better)’, 후자를 ‘창조적 혁신(creative innovation something new)’이라고 합니다. 즉, 혁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기회추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는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욱 큰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시장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TAM(Total Addressable Market, 도달가능시장 또는 전체시장), SAM(Service Addressable Market, 접근가능시장 또는 유효시장), SOM(Service Obtainable Market, 수익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영달 교수는 디지털 대전환으로 지역과 국경의 물리적 한계가 사라지면서 TAM이 확대되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비즈니스모델이 더욱 높게 평가(가치평가)된다고 이야기했다.

“혁신역량이 잘 계발되면, 이전보다 더 큰 기회의 장에 발을 딛게 되는 시대와 우리는 마주하고 있습니다. 혁신과 기업가정신 교육에 국가 및 지역 차원의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창업기업, 신생기업은 우리 삶과 사회에서 신생아와 같습니다. 창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업생태계는 ‘창업-성장-수확/ 정리-재창업/재투자’의 연속적 순환관계 흐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창업이 양적으로 많아야 하는 것은 물론, 질적으로 고도화 되어 생존력과 성장력을 높게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창업활동을 통해 경제적/비경제적 보상(수확)이 잘 이루어지고, 기대 활동을 충분히 하지 못한 기업들도 원만하게 정리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들이 다시 재창업이나 재투자에 나서서 그 혁신의 경험을 계속 연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생기업의 양적,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기업생태계 핵심입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계속기업’ 또는 ‘영속기업’의 관점에서 이론적 정의를 내립니다. 그러나 현실적 기업의 생애주기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업생존율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개인기업(자영업)을 모두 포함할 때, 창업 후 1년이 지나고 나서 생존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65%입니다. 3년 생존율은 45%, 5년 생존율은 32%입니다.”

이영달 교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창업정책은 ‘다산다사(多産多死)’의 결과를 냈다면서, 이는 많이 태어나고 많이 사망하는 후진국형 인구 실태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의 창업환경이 좋은 나라로 영국을 꼽았다.

“영국은 과거 ‘소산다사(少産多死)’로 대변되는 기업생태계를 지녔습니다. 미국이 2011년 ‘Startup America Initiative(스타트업 아메리카 정책)’을 발표하자, 3개월 뒤 영국은 ‘Startup Britain Initiative(스타트업 브리튼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창업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하는 일련의 정책입니다. 이들의 핵심정책은 우리의 창업정책과 크게 다릅니다. 미국의 창업정책은 ‘혁신조달’을 강조하고, 영국의 경우에는 기업의 부실 예방 및 재도전 지원 종합기구의 역할을 중시합니다. 영국은 본 창업정책을 전개한 결과, 연간 60만개 이상의 법인 창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들 기업의 부실화 정도는 최근 40여년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즉, ‘소산다사(少産多死)’의 기업생태계가 ‘다산다생(多産多生)’으로 바뀌면서 영국의 실업률과 특히 청년실업률 모두 통계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가 취하는 창업정책은 ‘창업-성장-수확/정리-재창업/재투자’가 지속가능하고 선순환하며 발전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유니콘 기업 OO개 육성’과 같은 정책은 정부가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시장에서 직접 뛰는 선수(플레이어) 역할을 자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자원 공급과 지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기업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야기하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기업생태계 전반의 기반을 강화하고, 그 순환 흐름이 지속가능하고 선순환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정부 정책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 맥락에서 현 정부에서 집중해야 할 창업 및 기업관련 정책의 첫째가 혁신조달을 통한 혁신의 유효시장 개발입니다. 그리고 영국 같이 기업의 ‘부실 예방-관리-법적정리-재도전 지원’이 입체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기업 부실 예방 및 재도전 전담기구’를 설치해서 기업 실패를 사전 예방하고, 실패도 자산으로 만드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낳은 혁신조달

이영달 교수는 새로운 산업생태계 조성과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을 위해 혁신조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과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기업의 혁신은 혁신조달이 잉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플의 아이폰, 테슬라의 전기차 모두 혁신조달이 잉태한 혁신상품입니다. 미국의 국가혁신도 혁신조달에 기초합니다. 공공시설과 공공인프라를 미래혁신기술 도입의 실험장으로 활용하는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 미국의 혁신 방법론입니다. 미국의 공공조달을 큰 틀에서 압축해보자면, 혁신조달 60%, 포용조달 40%의 구성비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혁신조달은 이름만 혁신조달이지 미국에서 취하는 혁신조달과는 그 성격과 규모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혁신조달을 명명한 것은 2019년입니다. 혁신제품을 조달청 예산으로 구매해서 수요기관에 제공하는 것과 기관별 물품 구매액의 1%를 혁신구매 목표액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2019년 66억 원에서 2021년 441억 원대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후자의 경우를 포함하여 2021년 혁신조달 총액은 3,555억 원입니다. 같은 해 공공조달 총액이 184.2조 원이니 혁신조달 총액비율은 전체 조달의 0.19%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혁신조달에 대한 방법도 우리는 미국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선 우리의 중소기업제품 우선구매제도는 미국식 분류 기준에는 ‘포용조달’로 간주됩니다. 2020년 중소기업이 공공조달로 계약하는 금액은 115조 3,000억 원으로 총 계약액 175.8조 원 대비 65.6% 비중입니다. 즉, 미국식 해석으로 보자면 우리는 포용조달 구성비가 최소 65.6%라는 의미입니다. 미국식 혁신조달은 신생기업에게 ‘혁신의 유효시장’을 제공하는 것을 대전제로 합니다. 단, 중장기 조달계획을 수립하고, 예비 창업자와 신생 기업에게 적극 홍보해서, ‘창업 및 사업화의 기회’로 삼으라는 접근법입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주 정부 차원에서 이런 움직임을 활발히 펼칩니다. 앞서 설명한 미국의 ‘Startup America Initiative’에는 각 연방정부의 부처가 예비 신생기업(예비 창업기업)에게 한정되는 혁신조달 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 비율이 5%였습니다. 이를 ‘창업기회’로 제공할 테니 창업을 해보라는 내용입니다. 미 연방 교육부는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는데, 중고등학생이 창업팀 구성원으로 함께 참여하는 경우 가점을 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교육 수요자가 교육관련 물품 등의 공급자로 역할을 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미 개발한 기술이나 제품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과 그 시작점 자체가 다릅니다. 미국의 혁신조달은 SBIR, STTR, i-Corps 등 혁신활동을 전주기적이고 입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반 프로그램과 연계됩니다.

그래서 공공조달을 기획 및 계획할 때부터 예비 창업자나 신생기업이 구조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대상이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나 역할을 하고, 규모 있는 대상을 범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시의 퀸즈와 브루클린지역을 잇은 차세대 지상 트램 프로젝트에 차량 제조도 신생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혁신조달에서는 예비창업자나 신생기업이 가지는 품질과 기능성 보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나 공공 또는 민간 위탁 품질 보증 및 시험인증 기관이 처음부터 함께 조달의 전 과정을 수행합니다. 미국의 각 지역은 거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를 신생기업들의 혁신의 장으로 만들어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를 토대로 지역혁신 생태계의 역동성을 일거에 고도화시킵니다. 뉴욕 지상 트램 프로젝트는 5G, 브로드밴드, 신소재 등 신산업 혁신가들과 신생기업들을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유인했습니다. 현재 뉴욕의 과학기술기반 창업생태계는 실리콘밸리와 견주거나 부분적으로는 넘어서는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영달 교수의 설명은 창업생태계를 넘어 혁신 생태계를 향했다. 그는 혁신 생태계가 생태학의 생태계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혁신가(개인, 기업, 단체)들이 생산-소비-분해 및 촉진 기능을 역동적으로 수행하며 독립적으로 번성 발전하는 것이 혁신 생태계라는 이야기다. 그는 국가나 지역차원의 혁신 생태계를 기업생태계, 지식(기술)생태계, 사회혁신 생태계의 세 가지로 나누고, 이들이 상호 작용하며 함께 발전해나가는 것을 혁신 생태계라고 설명했다.

“이들 간 상호 작용에서 그 주도권을 기업생태계가 지닐 때, 보다 더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나 지역차원에서는 ‘기업주도 혁신 생태계’가 조성되고 역동성이 제고될 수 있을 때 지속가능한 혁신 생태계의 모습을 지닐 수 있습니다. 지역에 특화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의 혁신 기반 및 하부구조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 합니다. 해당 지역의 인구 및 고용 구조, 기반 산업, 인프라 및 제도환경, 지역 커뮤니티 및 문화 등을 살펴, 해당 지역에 최적화 된 기업생태계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해당 지역의 기업활동과 관련하여 창업은 어떤 산업을 중점적으로 할 것인지, 어떤 기업 유형을 중점적으로 할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창업 인프라와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가와 혁신가를 유입시키기 위한 어떤 제도적 문화적 인센티브가 만들어져야 하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성장과 수확 및 정리 그리고 재창업과 재투자와 관련된 사항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기업생태계에 대한 산업적, 유형적 특성들이 정립되고 나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식(기술)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지 살펴야 합니다. 특정 산업에 아주 전문적인 하이테크 중심으로 접근해야 할지, 응용기술이나 보편적 지식을 상업화 하거나 산업화 하는데 특화된 지식 또는 기술 생태계를 조성할지 등을 살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 연구기관, 각급 학교, 기업 등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는 주체들의 상호작용이 역동성을 지니며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비수도권 지역은 사회혁신 생태계를 신경 써야 합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공동체 문화가 창의와 혁신을 지향할 수 있도록 이를 살펴야 합니다. 개방성과 다양성이 장려되고, 실험적인 활동들이 보상받는 지역 공동체가 만들어 질 때, 지역혁신 생태계는 지속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 혁신조달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영달 교수는 혁신체계와 혁신 생태계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체계(Innovation System)는 20세기 국가 및 지역 혁신의 주된 패러다임입니다. NIS(국가혁신체계)과 RIS(지역혁신체계)라는 용어를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NIS와 RIS는 기본적으로 투입과 산출 메커니즘입니다. ‘투입-과정-산출-결과(성과 및 영향)’라는 선형적 접근법입니다. 그래서 이를 ‘푸시 모델’이라고 합니다. 이와 달리 혁신 생태계(Innovation Ecosystem)는 구성요소(혁신 주체) 간 상호작용과 이를 통한 유기적 공진화(co-evolution) 관계성을 지닙니다. 선형적이지 않고,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를 ‘풀(pull) 모델’이라고 합니다. 전개 방식에서도 차이를 지닙니다. 혁신시스템이 하향식 접근법을 취하며 주로 산업-공간 전략 중심의 접근법을 취합니다.

그래서 혁신시스템 패러다임 하에서는 산업단지, 혁신 클러스터, 혁신도시 등을 설치 및 조성하며 자원의 투입과 공급을 주된 구현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자연스럽게 정부와 공공 부문이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하향식 접근법을 취합니다. 시장과 사람 전략 중심의 접근법입니다. 시장관점에서는 혁신의 유효시장 개발에 중점을 두는데, 바로 이것의 핵심이 ‘혁신조달’입니다. 또한 제도혁신과 함께 혁신가 및 기업가를 양성하고, 기업가정신을 확산하여 혁신 유효시장이라는 ‘기회’를 추구하고 실현할 기업생태계 유입군의 풀을 확대합니다. 개인과 기업, 즉 민간이 핵심 주체고 대학 또한 핵심 주체의 한 축을 맡고 있습니다. 혁신 생태계에서 혁신조달은 구현 수단의 핵심 중의 핵심이고, 혁신 생태계 조성과 역동성 제고의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지위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예비창업자나 신생기업에게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는 규모와 수준에 있어 미국은 우리보다 비교 열위에 있습니다. 그 대신 혁신조달을 통한 강력한 혁신 유효시장이라는 ‘시장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를 토대로 사업화 및 창업에 필요한 자금은 민간 혁신금융생태계를 통해서 조달하는 구조입니다. 혁신조달(사회적 기업의 경우 포용조달)을 기회삼아 창업하고 성장한 다음 민간시장으로 나아가 지속적인 혁신경쟁을 펼치는 것이 미국식 혁신 생태계의 전형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혁신을 위해선 어떠한 움직임이 필요할까? 이영달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혁신을 위해선 기업보다 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이 매우 격렬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지역-기업-대학 차원의 혁신 생태계 패권 경쟁’이 미국과 중국 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저는 국가차원에서 기업의 혁신활동을 설명할 때, ‘y=ax+b’의 2차 함수 그래프로 설명을 합니다. 기업의 투입 자원을 가로축(x), 기업의 성과를 세로축(y)으로 하고, 기울기(a)를 기업의 혁신역량 수준이라고 할 때, 국가의 혁신 생태계 정책 수준을 절편(b)으로 전제하고 그림을 그려 보면 확연히 비교가 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은 절편 수준, 즉 국가의 혁신 생태계 정책 수준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같은 수준과 규모의 자원을 투입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보다 절편값의 차이 수준만큼 더 한 혁신역량(기울기 값)을 가져야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기업이민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본사의 국적을 완전히 옮겨가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아세안 혁신기업 대표사례로 소개되는 ‘그랩(Grab)’은 말레이시아에서 창업했지만, 더 나은 기업 활동을 위해 혁신 생태계 수준이 뛰어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겨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오세아니아 그리고 인도의 혁신 기업들과 신생기업들 그리고 잠재적 기업가들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혁신의 유효시장, 즉 시장기회가 자국보다 크고 개방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국가차원의 혁신전략을 빠르고 집중력 있게 수립하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범정부적이고 범국가적인 국가혁신전략이 성안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2009년, 영국은 2015년과 2021년(2035년까지의 중기 전략) 각각 국가차원의 혁신전략을 성안하고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국가 및 지역 혁신 생태계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처럼 분절적이고, 20세기 패러다임에 묶여있는 국가 혁신전략을 보다 입체적이고 정교하게 재설계하고, 높은 몰입도를 기반으로 강력히 실행하는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그 참고사례를 싱가포르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1989년 싱가포르 혁신 생태계 정책 프레임워크라는 것을 성안하여 2065년까지의 중장기 전략 하에 강력히 실행 중입니다. 특히 혁신조달 정책은 조달청의 정책 영역 범주를 넘어 범국가적 차원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이영달 교수는 해외의 선진정책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이란 명목 하에 제도의 본질이 오염되는 것을 경계하며 3Ps 접근법을 제안했다.

“Perspective-Principal-Practice로 이어지는 3단 위계 접근법입니다. 혁신조달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인지, 혁신조달을 위한 원칙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그리고 본 관점 및 원칙과 정합성을 이루는 시책은 무엇인지를 깊이 살펴 장기적으로는 미국을 뛰어넘는 혁신조달 정책을 전개한다는 목표를 설정합니다. 하지만 중단기적으로는 미국식 혁신조달 정책으로 접근할 때 효과가 더 높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국가 및 지역혁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는 최근 인수위 지역균형특위에서 기획한 지역혁신 생태계 정책 내용을 지자체 단체장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경상북도에서는 미국식 혁신조달을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지자체 차원에서 먼저 시행해 보려 합니다. 조달청과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에서도 적극 관심을 갖고 이를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영달 교수의 지역혁신 전파행보가 전국 지자체로 향하고 있어 향후 성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