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이슈


대한민국의 지역불균형 해소,
지역특성화로 풀 수 있다

2019년 대한민국의 수도권 인구는 전체 국민의 절반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1.8%로 국토의 1/10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인구 불균형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선 지역이 자생력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역 특성화 기업의 공공성 있는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한다면 혁신지향 공공조달은 균형발전을 이룰 효과적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지역 불균형은 산업 변화의 부산물

심화하는 지역 인구 불균형 문제를 전문가들은 블랙홀에 비견해서 설명하곤 한다.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지난해 KBS는 〈시사기획 창〉 소멸의 땅 지방은 어떻게 사라지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도권이 충청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등을 빨아들이는 현상을 지도로 보여주며, 서울에만 대한민국 국민의 약 20%가 모여 살면서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가 텅텅 비어가는 상황을 ‘골다공증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021년 8월 13일, 감사원은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감사보고서에서 현재의 합계출산율과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지속되면 25년 후인 2047년 경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시군구가 소멸 위험지역이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인구집중 문제는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한 이후 꾸준히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1964년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사업을 추진하고, 지방에 성장거점 도시를 육성하는 식의 대책을 꾸준히 내놓았다. 지난 정부에서도 국가균형발전 특별법과 혁신도시특별법 등을 개정하고 지방분권형 개헌을 추진하는 등 노력을 이어갔지만 수도권 집중화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1760년대 시작된 산업혁명은 공업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만들었다. 이후 2차와 3차로 이어지는 산업혁명은 생산기술 혁명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생산하는가에 따라 각종 산업이 태동했다. 생산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거나 생산량이 증대했다. 산업혁명은 유래 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하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생산물은 각종 부작용도 낳았다. 화석연료는 환경을 오염시켰고 폐기물은 쌓여만 갔다.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4차 산업혁명으로 그 답을 찾아가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 기술을 고도화했다는 점에서 3차 산업혁명의 연속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고도화한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에선 3차 산업혁명과 단절된다고도 볼 수 있다. 3차 산업혁명까지의 핵심은 ‘생산’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더욱 중요한 건 ‘소비’다. 과거에는 소비할 예정이거나 소비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사용자가 구매해서 소유해야 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소비자들은 필요한 시기에 원하는 제품을 대여하거나 구독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소비 양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기보단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산업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의 형태에 따른 재분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천편일률적인 소비가 아니라 개인별, 지역별로 특성화된 소비자의 구체적인 니즈도 중요해지고 있다.

삶의 형태가 달라지고 산업 구조가 재편된다는 것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간다는 뜻이다. 관건은 변화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대응이다. 대응수준에 따라 국내 사회문제의 예방 및 해결 능력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치열해지는 국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지역 산학연의 복합 클러스터를 적극 활용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지난 4월 27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지역균형발전특위는 균형발전 지역공약을 발표했다. 17개(1개의 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8도, 1특별자치도) 행정구역별로 7대 공약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15대 정책과제를 선정한 형태의 발표였다. 예를 들어, 서울은 1. 더 넓어지는 서울: 미래지향적 도시공간 창출 2. 내 집이 있는 서울: 주택공급 대폭 확대 3. 금융허브특구, 스타트업 메카 서울 4. 스마트 미래도시 서울 5. K-컬처 허브 서울 6. 자연이 함께하는 서울 7. 따뜻한 일상의 서울 등 일곱 개의 핵심공약을 내놓고, 여기에 대응하는 15개의 정책과제를 내놓는 식이었다. 8. 스마트 미래도시 서울을 실현하기 위해서 ‘미세먼지 감축’과 ‘자율주행 등 미래 교통수단 기반 마련’이라는 정책과제를 제시한 것인데, 이들은 서울에서 추진할 15대 정책과제 가운데 5번째와 6번째에 해당한다. 또, 9. ‘따뜻한 일상의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마트 헬스케어를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정책과제 11)’와 ‘AI 빅데이터 및 IoT 기술을 활용한 복지체계 개편(정책과제 12번)’ 등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지역발전 공약이 모두 4차 산업혁명이나 혁신과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예시한 자율주행이나 AI, 빅데이터, IoT 등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꼽힌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토대 없이 대한민국의 지역발전을 이루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윤석열 정부의 균형발전 지역공약에서 특히 눈에 띠는 건 ‘클러스터’다. 부산광역시에는 블록체인 특화 클러스터와 해양금융·해운기업 클러스터를, 대구광역시에는 전기차 혁신산업 클러스터를, 광주광역시에는 국가AI데이터센터·광주과기연 연계 산학연 클러스터와 차량용 반도체 클러스터를, 울산광역시에는 수소 모빌리티 클러스터, 울산도심항공모빌리터 클러스터, 전기추진체계 그린쉽 클러스터와 글로벌 기술인재 양성 클러스터를,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중부권 가속기산업 클러스터를, 경기도에는 파주메디컬 클러스터와 고양테코노밸리를 연계한 바이오클러스터, 파주LCD산업단지와 양주테크노밸리를 결합한 디스플레이·ICT클러스터, 고양영상밸리를 활용한 K-콘텐츠 클러스터, 용인·안성·이천 반도체 클러스터를, 충청북도에는 오송 K-트레인 클러스터와 방사광가속기 산업 클러스터를 충청남도에는 스마트 국방 및 보안산업 클러스터와 미래의료 신산업 클러스터를 전라남도에는 우주·항공산업 클러스터를, 경상북도에는 POST탈원전 탄소중립 신산업 클러스터와 스마트농업 클러스터를, 경상남도에는 재난안전 클러스터를 조성하거나 강화하겠다는 공약이 많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을 시작한 나라로 꼽힌다. 국가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 지방정부 등이 힘을 합한 클러스터가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면 4차 산업혁명과 지역 클러스터, 전 국가적 협력이 미래 문제 해결에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도 생산기술 혁명으로 시작되었다. 독일의 국가 발전전략인 미래 하이테크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된 인더스트리 4.0은 전 세계 4차 산업혁명의 효시로 꼽힌다. 2006년 8월, 독일연방교육연구부는 정부, 연구소, 산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독일의 혁신기술 발전 마스터플랜으로 하이테크 전략을 수립했다. 미래 하이테크 전략의 목표는 독일을 혁신 선도국가로 견인하며, 뛰어난 아이디어를 혁신제품과 서비스로 상품화하며, 혁신 솔루션을 개발하여 국민 삶을 개선하고, 전통적인 수출·산업 강국인 독일의 지위를 공고하게 하며, 환경이나 지속가능성 등 시대적 문제에 창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수차례 수정된 후 2010년 7월에 기후·에너지, 건강&영양, 이동(Mobility) 안전, 통신 5대 분야 과학기술 분야에 역점을 둔 ‘하이테크 전략 2020’으로 보완되었다. 그리고 2011년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발표했는데, 주요 미래 프로젝트를 인더스트리 4.0으로 통합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독일의 노후화한 (제조업) 생산기술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시작되었지만, 제조업 혁신에만 머무르지 않고 독일의 미래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전체적으로 제고하려는 우리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독일 정부는 2014년의 뉴-하이테크 전략을 발표하면서 1. 가치창출과 삶의 질 관련 분야에 대한 우선적 도전 2. 교류 및 이전 3. 산업에서의 혁신 행보 4. 혁신 친화 프레임워크 5. 투명성과 참여를 5대 중점요소로 정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6대 선행과제로 디지털 경제 및 사회, 지속가능 경제 및 에너지, 일자리 혁신, 건강한 생활, 지능형 모빌리티, 시민안전 실현을 선정했다. 6대 선행과제는 독일 정부가 지향하는 미래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인더스트리 4.0이 스마트 팩토리로의 전환을 넘어 디지털 사회경제로의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할 방법론으로 설정되었다.

독일 정부는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면서 발생하는 기업 간 이해조정에 나서는 한편 중견·중소기업의 표준화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2015년에는 10개의 중소기업 4.0 역량센터를 설립해서 중소기업의 디지털화를 도왔다. 독일 정부는 12개의 중소기업 4.0 역량센터를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다. 표준화와 디지털화가 중요한 이유는 융합과 연결 때문이다. 아날로그 기술은 서로 연결해서 융합하기 어렵다. 하지만 표준화와 디지털화가 이루어지면 서로 다른 기술, 산업, 아이디어가 융합하면서 전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산업계와 학계, 연구소를 하나로 묶었다. 독일은 기초과학, 응용과학, 부문 간 융합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변화하는 사회를 연구·예측·대비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런 전통이 산업계와 학계, 연구소, 정부를 하나로 묶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일의 핵심 클러스터로는 IT'S OWL(Intelligent Technical Systems OstWestfalenLippe), Microtec Sueswest, Software Cluster 등이 있다.2007년부터 독일의 연방교육연구부 주관으로 우수지역 혁신클러스터를 선정해 지원하는 대회를 개최했는데, 인더스트리 4.0과 관련해서 이 세 개의 클러스터가 혁신클러스터로 선정되었다.

IT'S OWL은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도시인 파더보른에, Microtec Sueswest는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프라이부르크에, Software Cluster는 독일 중부 헤센 주의 다름슈타트에 본부를 두고 있다. 독일 전역에서 기업과 대학교, 연구소가 클러스터를 구성하여 지역혁신을 이끌고,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16개 연방주 가운데 기계공업 중심지로 꼽히는 바이에른 주 역시 산업계, 학계, 연구소, 지방정부를 망라한 혁신클러스터를 구축했다. 바이에른 혁신클러스터는 뛰어난 중소 벤처기업들로 유명하다. 2018년, 바이에른 주정부 산하 경제부는 경제에너지기술부로 개편하고 바이에른 혁신클러스터의 운영에 다양한 지원활동을 벌였다. 특히 중소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존의 창업 지원은 물론 기술기반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인력수급과 사업화를 위한 전시회 개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바이에른 혁신클러스터에 속한 지역 대학교 및 기술학교에서 교육 받은 인재들이 중소 벤처기업으로 공급되었고, 이들이 오랜 시간 현장 전문 기술자로 양성되면서 기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다듬어져 시장성을 갖춘 제품이나 서비스로 재탄생했다. 바이에른 혁신클러스터에선 중소 벤처기업과 지역 연구소를 연결해서 고도화한 기술이전이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혁신클러스터는 고용과 연구개발, 상업화와 산업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바이에른 혁신클러스터의 중소 벤처기업은 지역 경제활동의 40%, 연간 투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지역 특성화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바이에른 혁신클러스터 산하 22개의 기술창업보육센터는 450개의 첨단기술기업을 창출했다. 혁신클러스터의 기술 선도기업은 지역 첨단 연구소와 협력을 통해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역의 성장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독일의 각 지역별로 특화된 다양한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벌이며 고용과 수익을 창출하고 지역 특성화를 견인하는 것이다.

기획부터 구매까지, 교육부터 고용까지 총체적으로 혁신해야

4차 산업혁명은 세상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는데, 변화하는 산업생태계에 선제적으로 정확히 대처해야 이에 대처할 수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혁신클러스터는 지역별 산업 특성화를 실현해서 지역불균형의 문제를 예방한 좋은 선례다. 과거에는 산업의 복잡성이 크지 않았다. 지역에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유치하면, 해당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났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유치하는 것만으론 지역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두 개의 대기업을 이전한다고 그 지역이 수도권과 경쟁하는 건 불가능 하다. 그 정도로는 청년인구를 유인하기는커녕 현재의 인구유출에도 대응하기 어렵다. 공장이 들어서면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그들이 소비시장을 형성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노동집약적인 산업 구조에서는 공장이나 기업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고용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설비의 자동화가 한껏 진행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커다란 공장을 유치한다고 충분한 고용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역을 특화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연구, 고용, 제도, 산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독자적 지역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

지역 특화가 반드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업가정신기술원의 이영달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인 기업생태계를 성공적으로 조성한 지역 사례로 경상남도 거창군의 승강기밸리를 꼽는다. 거창군의 주력 산업은 사과 농업으로, 연간 1,500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거창군은 2008년 폴리텍대학을 양수하여 2010년에 한국승강기대학교로 개편했다. 한국승강기대학교는 엘리베이터라는 독특한 산업에 특화된 인력양성의 장이 되었다. 37개의 승강기 관련 기업들이 거창군으로 모여들면서, 지역 교육시장이 고용시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거창군은 엘리베이터 특화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자생력을 높였다. 현재 거창군에서 엘리베이터 산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900명이 넘고, 관련 산업의 기업 매출액은 연간 2,000억 원을 상회한다. 지역 주력 산업인 사과농업의 수익을 훨씬 웃도는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거창군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산업특구로 지정되어 발전해가고 있다. 이밖에도 서핑에 특화해서 서퍼들의 성지로 인기를 누리는 양양의 서퍼비치, 신기술창업 집적 지역화 하여 200여 개의 기업을 입주하도록 한 경상북도 칠곡의 영진 전문대학교 등이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이 지역 혁신을 이끈 사례에 해당한다.

산업의 형태가 바뀌어가는 만큼 이제 지역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노동집약 단계의 산업사회에서는 대규모 생산거점의 역할이 압도적으로 중요했다. ‘자동차 생산도시’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지역 개념에 매몰되어선 곤란하다. 물론 앞으로도 자동차 생산도시처럼 커다란 형태의 지역산업이 중요한 곳도 존속할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과거보다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기도 할 전망이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기획력, 핵심기술, 테스트베드 중심의 작은 지역 생태계도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산업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으로 여겨지던 도서산간의 작은 마을이 특정 사업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지역에 맞춘 교육을 특화 발전시킨다면 매우 섬세한 문제 제기가 가능할 테고, 혁신적이면서 공공성까지 갖춘 해법을 내놓을 개연성도 크다. 현장에서 꾸준히 검증해가며 연구개발을 진행한다면 제품과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부안에는 예부터 양잠사업을 진행하던 누에마을이 있다. 또, 강원도 첩첩산중에는 일교차가 크고 강설량이 많아서 사람이 살기 척박하지만 황태를 생산하기에는 매우 좋은 마을이 있다. 이런 산간오지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산업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역 특성을 살려 국민 건강을 증진할 만한 뽕나무 또는 누에용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황태 건조 기술을 발전시키는 ‘작은 지역 신산업’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또,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바닷가 소도시가 해양 안전용품의 요람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 연구, 제도, 산업, 소비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총체적이며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지역 대학교들이 인구절벽에 견딜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대학교도 지역의 맞춰 특화해야 경쟁력을 지닌다. 지역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차별적 경쟁력을 지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과거에는 지역적 특성에 최적화한 제품이나 서비스, 솔루션은 시장성이 낮다고 외면 받았지만 이제 전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는 시대다. 오히려 가장 지역적인 아이디어가 가장 세계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각광받을 수도 있다. 물론 초기 시장의 규모는 작을 수 있지만 공공조달 시장이 혁신적인 기업과 아이디어가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자양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 공공조달 시장에서 벌인 실증 과정이 작은 기업에 공신력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역 불균형발전은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정부, 지자체, 산업계, 학계, 유관기관이 힘을 합해 풀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을 너무 큰 틀에서 바라보기보단 더 가까이, 더 자세히, 더 세심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조달시장 역시 혁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지역 불균형 개선과 국가경쟁력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