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인터뷰_국방부

혁신조달과 기존 제도의
융합을 통해 한계를 돌파한
국방부의 적극행정

지난해 국방부의 혁신조달 목표액은 295억원이었다.

2021년 11월 25일 현재, 국방부는 304억원의 실적을 내며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국방부가 관할하는 군부대는 매우 특수하고 폐쇄적인 조직이어서 혁신조달을 확산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방부 군수기획과의 최정윤 사무관은 혁신조달 제도와 기존의 군수품 상용화 정책을 융합해서 난관을 돌파했다.

혁신의 요람, 국방부

조달을 통해 기술 혁신을 가장 큰 폭으로 일으킨 분야는 국방 관련 부문일 것이다. 과거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군수 경쟁은 우주로까지 확대되었다.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소련의 인공위성 명칭을 따서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부르는 사건이었다. 미국의 국방성은 항공기 항법장치를 혁신하기 위해 안정적이면서 빠른 전환속도를 갖춘 트랜지스터 개발을 요청했다. 젊은 과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회사를 차리고 게르마늄 트랜지스터를 대신할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소재 변화에서 그치지 않는 혁신이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에는 실리콘 반도체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나서 하나의 단지를 이루었다. 이렇게 태어난 실리콘 밸리는 인텔 등 IT의 본산지가 되었다. 인터넷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ARPANET도 국방 조달 과정에서 태어났다. 미국 국방부 군사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고민했고, 산학 합동 연구 끝에 서버를 분산 배치하는 기술인 ARPANET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ARPANET이 민간시장으로 나오면서 지금의 인터넷이 된 것이다. 이렇듯 국방 조달은 가장 혁신적일 수 있는 분야다.

국방 조달의 가장 큰 특성은 조달 대상이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로 나뉜다는 데 있다.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무기체계는 장기간에 걸쳐 국가 연구개발로 진행된다. 세부 성능이나 적용기술 가운데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항목도 적지 않으므로 혁신조달과 같은 공개적인 방식으로 구매하지 못한다. 무기체계는 혁신성과 안정성 확인 과정을 거쳐 조달된다. 전력지원체계는 무기체계를 제외한 나머지 군수품을 통칭한다. 전력지원체계 제품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연구개발을 진행하거나 구매하는 방식으로 국방부에서 조달한다. 혁신조달처럼 공개적인 방식으로 단시간에 국방부가 구매하는 제품은 전력지원체계 군수품으로 제한된다.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 제품은 지향하는 혁신의 방식도 다르다. 무기제품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혁신을 지향한다. 이를 파괴적 혁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칼이나 창처럼 근접 병기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총포류 같은 원거리 병기가 개발되면 무기체계는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 사용 방법이 전혀 다르더라도 무기체계는 과감한 혁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력지원체계 군수품은 파괴적 혁신보다 기존 기술을 응용하고 발전시킨 구조적 혁신을 선호한다.

국방조달의 또다른 특성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제도나 기술 확산이 민간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군대는 조직의 규모가 크고, 부대가 전국의 도서산간지역까지 널리 퍼져있으며, 보안과 안전 등의 이유로 폐쇄적인 전달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군은 새로운 제도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최정윤 사무관이 혁신조달을 적극적으로 확산하기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이유다. “좋은 제도나 제품이 있으면 일선 군부대에 알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특성 때문에 방법이 세 가지뿐입니다. 문서를 발송하거나 홈페이지에 게재하거나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뿐이죠. 이런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시간이 걸립니다. 군부대는 깊은 산골이나 섬에도 있습니다. 상위부대에 혁신제품을 알려도 도서산간의 예하부대까지 전달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2020년 7월부터 혁신제품과 관련한 문서를 열심히 만들어서 보냈는데, 예하부대에선 이제 반응이 오기 시작합니다.”

기존 제도와 혁신조달 제도의 융합으로 시너지를

국방부의 상용품은 특수차량부터 숟가락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국방부에서 혁신을 도입하고자 한 상용품은 어떤 것이었는지 최정윤 사무관에게 물었다.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장병들의 복지와 군대에서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큰 틀의 목표를 세웠고, 여기에 적합한 혁신제품 활용을 추진했습니다. 군대 안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장병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방부에서는 혁신조달이 도입되기 전부터 군수품을 구조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우수상용품 시범사용제도’를 시행했다. “우수상용품 시범사용제도를 시작한 건 2015년이고, 2019년부터는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민간의 우수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군수품으로 채택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조달청의 혁신제품 지정제도와 연계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두 제도가 시너지를 낼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군의 폐쇄적인 특성으로 인해 국방 관련 조달시장에는 민간기업이 참여하기 쉽지 않다. 무기체계는 엄격한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달시장을 함부로 개방할 수 없다. 하지만 전력지원체계는 다르다. 민간제품을 무조건 배제하면 전력지원체계에 혁신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장병들의 생활수준 향상도 요원하다. 국방부는 방위사업청에서 조달하던 여러 군수품을 조달청으로 이관했다. 그리고 우수상용품 시범사용제도를 만들었다. 급식이나 피복 이외 분야의 민간제품을 군사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 후 기준을 만족하면 군사용 적합제품 허가를 내주기로 한 것이다. 2021년 10월에는 조달청 나라장터 안에 국방상용물자쇼핑몰을 개설했다. 민간기업도 이곳을 통해 국방조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국방 관련 조달시장에 참여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던 민간 혁신기업에게 길이 열린 셈이었다. 최정윤 사무관은 반응이 고무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제품으론 포구 청소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병들이 2시간에 걸쳐 포구를 청소해야 했는데, 이 제품을 도입한 후 20분 만에 청소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포구 청소기를 개발한 업체는 판로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국방상용물자쇼핑몰을 통해 판로를 찾으면서, 기술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군에 납품한 실적이 생기면서, 해외로 수출계약도 체결했습니다. 업체에서는 국방부와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군사용 적합제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부적합 판정을 받더라도 어떤 문제인지 확인해서 개선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민간업체와 만나면 서로 감사하는 분위기입니다. 국방부에서는 전력을 강화하거나 병사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고, 기업은 군사용 제품의 판로를 찾게 되었으니까요.”

2022년 4월까지 약 6개월 동안 11억원 상당의 군수품이 국방상용물자쇼핑몰을 통해 조달 납품되었다. 혁신조달제품 신청보단 국방부의 우수상용품 시범사용제도를 통해 국방상용물자쇼핑몰에 등록하길 원하는 기업도 있다. 포구 청소기처럼 사용처가 오로지 군대인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민간제품을 군부대에 납품하길 원하는 경우도 많다. 불가사리를 활용한 친환경 제설제가 대표적이다. 많은 군부대가 산악지역을 포함해 적설량이 많은 곳에 위치해 있고, 동계활동을 위해선 제설제가 많이 필요하다. 최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ESG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국방부도 친환경 혁신제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혁신조달 제품으로 등록된 불가사리를 활용한 친환경 제설제를 적극 구매했다. 환경보호정책에 기여한 것이다.

국방부는 나라장터의 국방상용물자쇼핑몰에 우수상용품 시범사용 적합제품을 게시하여, 군 구매 담당자들이 군사용 적합제품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고 구매 접근성도 제고했다. 국방부의 우수상용품 시범사용 제도는 2019년 7월, 혁신조달의 대표사례로 지정되었다. 국방부는 군의 구매력을 활용해서 혁신조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9년과 2020년의 혁신조달 평가에서 국방부는 ‘매우 우수’ 판정을 받았다. 최정윤 사무관은 향후 군사용 적합제품으로 등록된 우수조달제품, 기술개발제품 외에 혁신제품의 비중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방부는 군부대의 특수성으로 인한 한계가 있지만, 기존 제도와 혁신조달 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시너지를 일으키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2021년 11월 25일 기준으로 295억원의 혁신조달 구매 목표액을 상회하는 304억원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국방부의 실적은 약 117억원의 혁신제품 구매액과 약 187억원의 혁신지향 공공구매 실적으로 구분된다. 국가 R&D연구개발 결과물을 혁신조달로 연결한 패스트트랙1을 통해서는 영상감시장치, 분전반 등을, 혁신시제품인 패스트트랙2로는 제설제 등을 구매했다. 혁신성과 공공성을 인정받는 제품을 심사한 패스트트랙3 제품 가운데는 저상형 트레일러와 통신 소프트웨어 등이 국방부 혁신조달 목록에 올랐다. 187억원의 구매실적을 올린 혁신지향 공공구매 내역에는 공공부문 R&D 결과물 구매액이 154억원 상당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능성 방한복과 함상화(배 위에서 착용하는 특수신발), 수통 등이 공공부문 R&D 결과물 구매 방식으로 조달되었다. 혁신성 인정제품 구매액도 33억원에 이른다. 태양광 발전장치, 영상감지장치, 도청방지장치 등이 대표적인 구매품목이다. 국방부의 실질적인 혁신조달 구매실적은 집계가 완료되면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방부는 2021년 12월 3일까지 약 25억 가량을 우수상용품 시범사용구매 제도를 통해 지출했다. 이 내역은 수요기반 혁신구매의 솔루션 공모형 및 기관 자체 문제해결 탐색 물품구매 금액으로 인정되었다. 일선 부대에서의 구매 결과는 일일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집계에 시간이 걸리고 있어 국방부의 혁신조달 구매 실적은 좀 더 늘어날 예정이다. 군부대의 특수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국방부 사업은 예산 규모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혁신조달에 참여하기 쉽지 않은 애로사항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적극행정을 통해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혁신기술과 혁신제품의 초기시장 창출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혁신제품의 테스트베드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조달청 혁신시제품 시범구매사업에도 참여하여, 해군 협업체계 구축사업 등 3건을 신청했다.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해군 협업체계 구축사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육군정보학교에서 신청한 특수목적형 소형·중형 드론 사업과 해군의 순찰용 무인 지상로봇 사업은 아직 업체가 선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2021년 4월 8일, 국방부와 조달청은 과장급 실무협의를 가졌고, 약 일주일 뒤인 4월 14일에는 제품설명회를 계기로 국실장급 협의도 진행했다. 혁신제품과 우수상용품 적합제품 후속조달 활성화 발안을 마련하기 위한 행보였다.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우수상용품 시범사용 제품설명회를 열었고, 혁신기술 보유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방부장관 명의의 인증서를 수여하고 최초의 적합제품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국방부는 앞으로도 혁신조달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

“올해부터는 혁신수요 인큐베이팅에도 참여합니다. 조달청이 국방부를 추진기관으로 선정했고, 국방부는 5개 정도의 과제를 진행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제당 평균 5억원 가량을 지원해서 국의 혁신수요를 발굴하려고 합니다. 육군본부의 참여의지가 강한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정윤 사무관의 설명이다. 그녀는 국방상용물자쇼핑몰 사업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군과 기업에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고, 시너지가 발생하는 걸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혁신수요 인큐베이팅 사업이 진행되면 군대가 더 좋은 혁신제품들을 확산시키는 요람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었다. 국방부의 적극행정은 MZ세대 장병들의 병영생활을 향상하고 대한민국의 전력을 강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