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조달합니다_씨드로닉스

씨드로닉스의
선박접안보조시스템

주목해야 할 혁신기술

혁신지향 공공조달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공공시장에서 선제적으로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신기술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어느 순간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하게 된다. 새로운 표준이 되어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다. 조달청 혁신장터에는 낯선 제품들이 가득하다. 씨드로닉스의 선박접안보조시스템도 그렇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씨드로닉스의 선박접안보조시스템은 전 세계 항구의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녹아들지도 모른다.

무인자율주행 시장의 블루오션, 푸른 바다

선박접안보조시스템. 이름조차 낯선 이 신기술은 2015년 창업한 스타트업 씨드로닉스에서 개발했다. 씨드로닉스의 박별터 대표는 카이스트 전자과에서 로보틱스 자율주행을 주제로 박사 과정 중이었다. 자율주행의 플랫폼은 자동차와 드론, 실내주행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박별터 대표와 연구실 동기들은 시선을 멀리 바다로 돌렸다. 이들이 바다에 주목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자동차와 달리 무인자율주행 선박을 연구하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공성이었다. 박별터 대표와 동기들은 사회에 도움 되는 기술을 개발하자는 데 의기투합한 상태였다. “어디에서건 운행 도중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양은 다릅니다. 사고가 나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선박사고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나니까요. 소외된 지역에 기술 지원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팀은 바다에서 도움을 주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박별터 대표의 설명이다. 박별터 대표와 동기들은 대학원에서 녹조 제거 무인선, 기름 유출 상황에서 펜스를 설치하는 무인선, 해파리 제거 무인선 등을 개발했다. 이런 바다에서의 경험 덕분에 졸업을 앞두고 선박 무인자율주행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었던 거죠.” 2015년, 박별터 대표를 포함한 4인의 대학원 동기는 스타트업 씨드로닉스를 설립했다. 대학원 연구팀이 그 모습 그대로 회사가 된 셈이었다. 처음에는 소형 무인자율주행 선박을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시장이 크지 않았다.

게다가 소형 선박의 사용자들을 만나서 시장 조사를 해보니, 한순간에 완벽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불가능해보였다. 자체 역량도 더욱 키워야 했지만 큰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더 큰 문제였다. 시장은 전폭적인 변화를 환경하기보다 부담스러워했다. 광활한 바다는 역동적이지만 보수적인 공간이었다. 씨드로닉스의 창업 멤버들은 어떻게 하면 바다에 점진적이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형선박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쪽 시스템은 건물과 비교할 만큼 매우 복잡합니다. 우리 기술만으로 대형선박의 모든 시스템을 자율화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선박의 운항 과정을 단계별로 쪼개어 생각해봤습니다. 그러자 항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박의 운항은 항만을 떠나면서 시작되어, 항만으로 들어오면서 마무리된다. 씨드로닉스는 선박 운항 단계의 맨 처음과 끝에 필요한 기술을 분석했다.

선박 접안을 보조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먼 바다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하면, 선박은 스스로 운항한다. 하지만 선박의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본격적인 무인자율주행 시스템이라고 하긴 어렵다. 장애물을 식별하지 못하고 직진해버리기 때문이다. 먼 바다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 장애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바다를 망망대해라고 표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항만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장애물이 나타난다. 선박들은 장애물 경보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지만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인식이 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박은 장애물 경보 시스템을 끄고 접안한다. 그 대신 전문가가 입항하거나 출항하는 배에 탑승해서 도움을 준다. 바로 도선사가 그 전문가다. 항공사를 가리키는 파일로트는 원래 선박 도선사를 뜻하는 용어다. 도선사는 육안으로 항구의 조류와 수심, 파도를 판단하고, 선박의 운행 속도와 항만까지의 거리를 종합할 수 있어야 안전한 접안(선박의 주차)이 가능하다. 도선사는 브릿지윙에서 무전기로 접안을 지휘하고, 선장은 조타실에서 도선사의 목소리에 맞춰 선박의 접안을 실행한다. 도선사는 이 모든 과정을 경험과 감에 따라 이끌어야 한다. 도선사들의 항해 경력이 보통 20년을 넘는 건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책임이 막중한지 짐작하게 해준다. 씨드로닉스의 접안보조시스템은 도선사의 경험과 감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데이터를 구체적인 숫자로 바꿔주는 인공지능 기술이다. 박별터 대표는 씨드로닉스의 핵심기술을 ‘인공지능 기반 해양환경 인식기술’이라고 설명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항만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공지능이 영상을 분석해서 데이터를 내놓도록 하는 거죠.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육지인지, 무엇이 선박인지를 인공지능이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인공지능에게 바다와 선박, 부두의 데이터를 주고 계속 학습을 시켜야 합니다. 창업하고 처음 한 일이 데이터 수집 장치를 가지고 직접 바다를 돌아다니며 데이터를 모은 겁니다.”

씨드로닉스의 임직원은 신기술의 잠재적 소비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조선소 종사자, 선장, 도선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신기술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했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발품을 팔아 데이터를 수집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기술을 개발해도 실제 시험운영해볼 테스트베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씨드로닉스는 인연이 있는 울산항만공사를 찾아가 시험 운영을 해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씨드로닉스는 공모전에서 울산항만공사를 만난 경험이 있었다. 울산항만공사가 2018년에 주최한 해양산업창업경진대회에서 씨드로닉스가 우수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1년간의 테스트는 씨드로닉스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데이터를 축적하는 한편, 시스템 고도화도 이루어졌다. “제품의 기술 개발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시장에서 실제 관계자들과 밀접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점이 의미 깊었습니다. 많은 도선사분들이 개선해야 할 사항에 힌트를 줬습니다. 부두 운영사와도 만나면서 시스템 설치 단가를 낮출 방법도 찾았습니다. 테스트베드 과정에서 시스템을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도 구체화되었다. 씨드로닉스는 선박 주차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선석 주변에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 위치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설치를 위해 부두 운영을 중단할 수도 없을뿐더러 비용도 낮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존 크레인이나 조명탑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그 차이를 시스템 세팅에서 조정해줘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씨드로닉스의 기술력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다면 씨드로닉스의 접안보조시스템은 도선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박별터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로는 도선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도선사는 대체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씨드로닉스의 접안보조시스템은 그 이름처럼 도선사의 접안을 더 안전하게 보조해주는 장치입니다.”

2019년, 씨드로닉스는 해양수산부의 신기술 인증을 받았고,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3월부터는 씨드로닉스의 접안모니터링 시스템이 혁신제품으로 지정되어 조달청 혁신장터에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공공시장의 구매실적으로 해외 시장을 노크한다

아직까지 씨드로닉스의 혁신제품 판매 실적은 높지 않다. 해양수산부에서 한 세트를, 여수광양항만공사에서 한 세트를 구매한 것이 전부다. 씨드로닉스의 박별터 대표는 시범구매가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한다는 바램을 털어놓았다. “공공기관에서 첫 구매를 할 때 조달청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혁신제품을 선뜻 구입하긴 어려울 겁니다. 새로운 기술의 새로운 제품이니까 당연한 일이죠. 혁신제품으로 지정되었다고 해도 바로 믿음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힘든 만큼 새로운 기술을 처음 구매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씨드로닉스의 혁신제품도 울산항만공사가 지원한 테스트베드 데이터가 있으니 첫 구매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범구매의 규모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울산을 포함한 4대항만에는 각각 100개가 넘는 선석이 있습니다. 1세트의 시범구매로는 선석 하나밖에 커버하지 못합니다. 이 정도 규모로는 제품의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별터 대표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국내 공공시장에서의 납품 실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씨드로닉스의 신기술은 당연히 전 세계 시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울산항만공사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열린 OTC(해양기술박람회)에 참가하기도 하고, 북유럽에서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유행에 의해 해외진출이 잠시 미루어지긴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해외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시장에서 묻는 내용은 결국 비슷합니다. 너희 나라에서는 혁신기술 제품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혁신제품으로의 선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납품 실적입니다. 씨드로닉스의 신기술은 혁신제품의 우수사례로 선정되어 기획재정부의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납품실적만으론 해외시장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씨드로닉스의 초기 사업 아이템은 무인 자율주행 선박이었다. 현재 씨드로닉스의 주력제품은 무인 자율주행 선박이 아닌 선박의 접안보조시스템이다. 그러나 씨드로닉스의 사업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할 순 없다. “씨드로닉스는 포트 투 포트를 지향합니다. 화물을 탑재했건 사람이 탑승했건 선박은 항구에서 출발하여 항구에 들어와야 의미가 생깁니다.

“씨드로닉스는 선박 운항의 전 과정에 안전기술을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선박화재 감지나 담당자 이탈여부 확인, 선박 추적, 충돌 예측 등의 모든 과정이
씨드로닉스의 관심사입니다.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다할 순 없습니다.
항만의 접안보조시스템은 시작일 뿐이고,
씨드로닉스는 단계적으로 선박 운항의 모든 과정에 다가갈 것입니다.”

항만에 장착한 선박 접안보조시스템이 씨드로닉스의 첫걸음이라면, 두 번째 걸음도 이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형선박에 적용하는 어라운드뷰 시스템이 그것이다. 씨드로닉스의 기상도는 맑다. 인국내 모든 항만(4대항만 포함)에 1,000개 가량의 선석이 있고, 해외 주요 항구로 눈을 돌리면 6만 개가 넘는 선석이 씨드로닉스 기술의 잠재적 수요처다. 박별터 대표는 전 세계의 항구와 선석의 시스템 설치 조건이 모두 다르다고 인정하지만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자동차의 주차 보조시스템은 선택이 아닌 기본 사양이 되었다. 한 번의 작은 사고에도 큰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선박에서 접안 보조시스템은 피할 수 없는 선택, 이미 다가오는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달청의 혁신장터는 씨드로닉스가 안전하게 미래 시장으로 출항하는 최적의 항구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