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을 통해 발굴한 혁신제품의 해외진출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먼저 더 넓은 시장으로 기업의 활동 무대를 넓힌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최근에는 BTS와 오징어게임의 성공이 화제를 모으는데, 그건 이들이 다른 시장에 진출해서가 아니라 더 큰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국경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한 21세기에, 국내 시장이 예선이라면 세계 시장은 본선이나 마찬가지다. 규모의 경제학 측면에서 세계시장 진출은 의미가 크다. 두 번째로는 국내의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해외에 제공한다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혁신제품의 해외진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부터 1995년까지 50년간 혁신제품을 활용한 수준 높은 공공서비스를 해외에 지원할 수 있다면 우리가 받아왔던 국제사회의 기여에 적절하게 보답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는 잠재적 미래 시장에 대한 투자의 성격도 크다.
하지만 혁신조달기업의 해외진출 현황이 아주 눈부시지만은 않다. 2019년 혁신지향 공공조달 제도를 도입한 이후 올 여름까지 628개 기업의 688개 제품이 혁신제품으로 지정되었다. 628개 기업의 98%가 중소기업이고, 66%(417개)는 벤처 기업이다. 창업 연혁으로 따져도 절반에 가까운 307개 기업이 업력 10년 이내의 젊은 회사다. 규모나 경험 측면에서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기업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혁신조달기업의 1/3(225개 기업) 정도가 3억5,400만 달러 수준의 수출고를 올렸다(2020년 기준). 9개 기업은 1천만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내면서 전체 수출액의 61%(2억1,600만 달러)를 차지했고, 1백만 달러 초과 성과를 낸 50개 기업의 수출액은 전체의 93.9%(3억3,2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혁신조달 기업의 상위 10%에 수출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조달청 조달수출지원팀은 수출 관심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해외법인이나 지사를 갖춘 기업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혁신제품 중 해외 인증을 보유한 기업도 1/3 수준으로 혁신조달기업의 해외진출 기반이 다소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혁신조달 기업의 도전의욕은 무척 강한 편이었다. 이미 수출을 시도해봤거나, 해외마케팅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거나, 전담조직을 편성해서 해외시장 공략을 고민 중인 기업이 과반 이상이었다.
이에 정부는 최근 혁신조달기업의 해외진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2023년까지 혁신조달 1개 기업의 평균 수출액을 현재의 60만 달러에서 50% 증가한 90만 달러로 확대하고, 수출 참여기업 비율도 36%에서 60%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번에 확정된 지원 방안은 1.수출 지원 기반의 정비 및 보강 2.혁신조달 기업과 혁신제품의 인지도 제고 3.통합과 협업을 통한 원스톱 지원서비스 체계 확립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앞서 많은 혁신조달기업들이 해외진출에 대한 도전의식을 강하게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지원 기반은 취약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은 바로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산업부와 코트라는 글로벌 역량진단(GCL) 서비스를 지원한다. 수출역량 진단을 의뢰한 기업은 수출 및 해외마케팅 부문별 세부역량을 7단계로 진단받고, 코트라를 비롯한 유관기업 사업을 맞춤형으로 추천받는다. 기업 현실에 맞춘 수출전략 수립을 지원받기 때문에 내수시장에 머무르던 기업이 수출기업으로 변모하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한 수출초보기업이 수출 실무를 밀착지원 받으면서 시행착오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올해까지는 지난해 수출실적이 없는 기업에 수출역량 진단 자격이 주어지고, 내년부터는 전년도 수출실적 10만 달러 미만 기업이 수출역량 진단과 맞춤형 지원시책 개발을 의뢰할 수 있다. 모든 비용은 무료이고, 최대 300만원까지 샘플 해외 배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10월 현재 코트라의 해외진출을 희망하는 내수·초보기업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지원사업에 41개의 혁신조달기업이 참여해 20개 기업이 수출(89만불)에 성공하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수출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 각 부처와 유관기관이 수출 지원사업 우대제도도 도입한다. 조달청은 전부터 G-PASS(정부조달 수출유망중소기업) 지정제도를 운영해 왔다. 2013년에는 95개의 G-PASS 기업이 1억3,000만 달러 상당을 수출했는데, 2020년에는 그 규모가 832개사 7억4,000만 달러 수준으로 높아졌다. (혁신조달기업은 40개사였는데, 이 가운데 15개 기업이 3,648만 달러의 수출 성과를 올렸다.) 올해부터 조달청은 G-PASS 기업 지정과 K-방역통합지원사업 참여기업을 선정할 때 혁신조달기업에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0년 G-PASS기업 중 40개사였던 혁신조달기업이 올해는 80개사까지 늘리고, 내년에는 누적 150개사까지 확대하려고 한다.
산업부와 코트라는 내년부터 수출바우처 사업과 공공조달 선도기업 육성사업 참가기업 선정 시 혁신조달기업 우대(평가시 가점 부여)해 수출기업으로의 전환과 해외 공공조달시장 진출을 지원한다.
공적개발원조(ODA)나 해외 실증사업과 연계한 혁신제품의 해외진출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지원한다. 올 4월, 코이카는 국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코이카 해외 ODA 기업진출 지원센터를 설치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 ODA 사업과 개발협력 현장에 참여할 때 경쟁력을 가지고 진출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의 국민 아이디어를 받아 사업화한 조직이다. 해외 ODA 진출을 꿈꾸는 혁신기업은 이곳에서 ODA 입찰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코이카는 UN 조달시장의 혁신제품 등록도 지원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2년부터 해외의 현지 실정에 맞게 혁신 기술과 제품을 최적화하는 해외 실증 액셀러레이팅과 사업화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편중된 무역의존도를 다변화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신남방 정책을 추진 중이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이 신남방 정책 대상국가다. 정부는 신남방 국가의 현지 법인과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혁신제품이 동반 진출하거나 현장 실증(test bed)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실제 올해 6월 4일, 한국중부발전은 조달청과 혁신제품 해외시장 진출 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혁신조달 기업의 6개 제품에 인도네시아 현지 실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기업은 스마트 잠금장치를 혁신제품으로 인정받은 P 기업이다. P기업의 스마트 잠금장치는 기존 자물쇠처럼 생겼지만 디지털 칩이 내장된 열쇠로 잠금을 해제하는 보안 시스템이다. P기업의 혁신제품은 발전소와 같이 물리적 보안이 중요한 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6개의 혁신제품을 현장실증하는 이번 지원사업에는 1억5,000만원이 지원되는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운영하는 현지의 다른 발전소로 파급될 경우 5~10배의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조달청은 요르단, 칠레 복합화력발전소에 혁신제품의 현장 실증을 확대하는 방안을 한국남부발전과 협의 중이다.
지식재산 보호와 해외인증 획득도 지원한다. 특허청은 혁신조달기업 IP전담지원센터를 개설하여 혁신조달기업이 특허와 상표 등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밀착 지원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혁신제품 해외인증 규격 획득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책자금과 현지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지원사업도 진행되고 있거나 강화한다. 올해 6월부터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올해 6월부터 2.15%의 변동금리를 적용해 혁신제품 지정증서 보유기업에 해외진출에 필요한 개발기술사업화자금을 최대 5억 원까지 지원한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은 혁신 조달기업의 수출 성장단계에 따라 보증비율을 상향해서 우대 지원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2년부터 혁신조달 기업에 맞춤형 시장조사, 바이어 발굴·매칭 및 마케팅·네트워킹을 통한 글로벌 조달시장 진입도 지원할 계획이다.
교육 지원사업도 진행된다. 코트라는 혁신조달기업 등에 9개 과정의 산업별·기업역량별 온·오프라인 무역실무·마케팅 교육을 지원하고, 조달청에선 해외조달시장 이론 교육은 물론 해외입찰 관련서류 작성·제출과 탈락 시 원인분석을 위한 디브리핑 요청까지 교육하는 실무형 실습교육을 마련해 해외조달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채용과 연계하는 청년 일자리 창출사업을 확대 추진할 예정이다.(해외조달시장 전문인력 양성과정).
취약한 수출 지원 기반은 혁신조달 기업의 해외진출에서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정부는 관련 부처들을 총망라해서 다양한 수출지원 기반 강화 정책을 내놓았다.
탄탄하게 다진 수출 지원 인프라, 기술력과 공공성을 겸비한 혁신조달 기업의 혁신제품들. 이 정도면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혁신제품은 대부분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들이다. 혁신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혁신성은 소비자가 선뜻 받아들여 시험 사용해보기 힘든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혁신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홍보가 필요하다. 정부의 두 번째 수출지원 정책은 혁신제품의 인지도를 제고하는 것이다.
먼저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다. 혁신제품의 대부분은 산업재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능과 품질, 작동원리, 활용 분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이러한 내용을 3D와 회전영상 등의 고화질 영상콘텐츠에 담는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의 신기술을 접목한 혁신제품의 홍보용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고, 조달청은 혁신제품 홍보 전용 영문 SNS를 지난 6월부터 개설하고 혁신조달기업 20개사의 영문 카드뉴스와 동영상을 제작해 운영 중이며, 지난 9월에는 혁신제품을 홍보하는 조달청장 영문 서한을 해외바이어 3,100개사에 발송했다.
혁신조달 온라인 전용관과 전시관도 신설한다. 코트라의 바이코리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고비즈코리아, 무역협회의 트레이드코리아 등 3대 공공 플랫폼의 혁신제품 정보는 실시간으로 연계한다. 어느 플랫폼을 방문해도 모든 혁신제품을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하나의 플랫폼에만 등록해도 공동마케팅이 가능하도록 하여 혁신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비대면 마케팅을 확대할 계획이다. 혁신제품의 온라인 전용관이나 전시관을 통해서 해외 바이어와의 1:1 화상 상담과 상품 피칭이 상시 가능하도록 지원한다(코트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혁신조달 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세 번째 정책 방향은 원스톱 지원서비스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혁신조달기업이 성공적으로 해외시장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치거나 조언을 구해야 할 정부 부처나 유관기관이 다양하다.
기획재정부와 조달청은 혁신조달 전문지원센터를 통해 특허, 수출지원, ODA 연계에 이르기까지 해외진출의 A부터 Z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한다. 기업별 해외진출 솔루션을 제공하고, 해외 현지 우수벤더와 연결해주는 한편 수출상담과 입찰지원 등 컨설팅-마케팅을 통합 지원한다.
외교부와 조달청,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협업한 K-방역 해외통합 진출지원사업은 해외 수출 성과가 매우 컸던 것으로 평가되는데, 유사한 협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원할 계획이다.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산업부와 코트라는 무역투자 플랫폼인 무역투자24를 구축한다. 올 하반기에 서비스를 개시하는 것이 목표인 무역투자24는 고객의 수출역량 진단, 해외시장 정보 제공, 유망시장 거래선 추천, 상담 컨설팅 및 Q&A, 사업 검색 및 신청의 과정을 모두 제공한다. 범정부 해외수출 및 투자 통합 플랫폼인 해외경제정보드림도 곧 서비스를 시작한다. 해외경제정보드림에선 해외진출 정보와 AI를 활용한 맞춤형 해외진출 팁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