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조달합니다_임헌억 혁신조달 과장

혁신조달로
대한민국을 혁신한다

조달 정책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을 혁신

조달 예산의 1.2%를 혁신 조달 제품 구입에 투입한다.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의 조달 상황이다. 지난해 조달 예산의 1.0%를 혁신 조달 제품 구매 예산으로 책정한 것도 과감한 결정이었는데, 조달 혁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올해는 혁신 조달에 0.2%p 더 높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조달 정책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을 혁신하려는 지금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혁신 조달 정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환골탈태를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조달청의 임헌억 혁신조달 과장을 만나 현재까지의 추이와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봤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혁신기술을 개발한다

정부나 지자체 등의 공공기관에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여러 물품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이러한 물자의 공적인 구매 절차를 공공 조달이라고 한다. 공공 조달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공기관의 업무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힘들다. 또한 조달에는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따라서 시민의 세금이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좋은 품질의 제품을 선별해서, 적절한 가격에, 투명한 계약 절차를 따라 구매하는 조달 행정은 매우 중요한 공적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조달을 국가 발전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혁신 지향 공공조달 정책이다.

전통적인 조달 시장에서 공공기관은 검증된 제품을 구매했다. 국가의 전략산업 분야 제품에 대한 특례가 존재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특별한 예외상황이고 일반적으론 이미 검증된 제품을 의례적으로 구매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야 투명성을 확보하거나 예산 낭비를 피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온갖 산업 분야가 융복합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있는 제품만을 의례적으로 구매하는 식으론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의 검증이 완료될 즈음이면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의 혁신성은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릴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 지향 공공조달 정책은, 국내 기업의 혁신기술 (시)제품을 공공기관에서 초기에 도입하여, 빠르게 실증하여 제품화를 돕고, 우수한 혁신기업과 제품에 공신력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2017년부터 정부는 혁신성장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고, 2018년 11월에는 ‘혁신제품 공공구매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는 모든 공공기관 구매 예산의 1%를 혁신제품 구매에 할애하도록 하여 조달을 혁신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나 기술을 발굴하고 선별하거나 선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달청의 혁신조달과장인 임헌억 과장에게 ‘혁신조달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졌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혁신기술을 개발하자. 혁신조달과의 표어인데, 저희가 지향하는 혁신조달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혁신조달의 핵심가치는, 정부의 조달을 이용해서 민간의 기업 혁신을 촉진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민간 기업이 혁신기술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국민은 이를 활용해서 보다 나은 삶을 누리게 만드는 조달정책인 거죠.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직까지 시장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제품을 정부가 도전적으로 구매해서 시험해보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봐야 할 사실은, 정부 구매가 혁신의 마무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혁신지향 공공조달은 혁신기업의 혁신적인 제품이 민간이나 해외 시장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헌억 과장은 조달청 혁신조달과의 목표를 단기적으로, 또는 중장기적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혁신제품을 많이 발굴해서 국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게 혁신조달 정책의 단기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론 이런 경험을 쌓아서 국가산업 성장을 촉진할 미래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게 궁극적인 목표죠.”

사용자의 눈에서 이루어내는 혁신

혁신적인 신기술, 신제품을 구매해서 미래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그런데 정부의 각 부처별로, 지자체별로, 공공기관별로 집중 육성하려는 미래기술 분야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산업의 융복합이 가속화하면서 어떤 기술은 여러 정부 부처와 연관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정책 집행의 주무부처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혁신조달과에선 실무를 집행하면서 이런 문제와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임헌억 과장은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인정하지만, 더 열심히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상의 해결방안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각 부처의 의견을 열심히 청취합니다. 각 부서마다 핵심적인 아젠다가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상대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걸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융복합이 가속화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처 단위별로 핵심조달 정책을 추진해나가지만 장기적으론 소비주체가 원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정부 부처의 상당수는 실제 사용자가 아니라 정책기관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나 제품을 실제로 쓰는 사람의 의견입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의 요구사항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시장과 백화점에서 필요한 것도 다릅니다. 혁신기술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주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현실에 적용된 기술을 접하는 소비자들입니다. 큰 틀의 아젠다는 받을 수밖에 없지만 구체적인 제품화에선 사용자의 의견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 같이 거대한 아젠다를 소비자 개인이 설정하진 않지만, 수소자동차나 전기자동차처럼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제품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소비자를 만족시킬 장치들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차량 이동 중 수소나 전기를 자동 충전해주는 기술이 구현되면 소비자의 만족도는 크게 향상될 테고, 탄소중립 제품 소비도 활성화되겠죠.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어도 쓸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혁신기술은 소비자 입장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소비자의 가려운 부분이 무엇인가, 사용자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실제 시장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인가. 혁신지향 공공조달이 성공하려면 수요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임헌억 과장에 따르면, 정부의 각 부처는 관할하는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사항에 집중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정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에서 탄소중립을 주제로 하는 혁신기술을 발굴한다면, 국방부는 장병생활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는 식이다. 그런데 혁신제품은 정부 중앙부처보다 지자체나 현업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자체마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특성화 산업이 있다. 지역별 특성화 산업과 혁신조달 제품의 조합은 좋은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2019년부터 규제 없이 혁신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규제자유특구 제도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지역 일자리 창출을 확대하고 지역 기업의 매출을 신장하기 위해 정부에서 R&D과제를 지원해주는 지역특화산업도 14개 시도를 포함한 48개 지역에서 시행 중이다. 이밖에도 미래 산업을 육성하고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지자체별로 추진 중인 사업도 다양하다. 지금까진 혁신조달 정책이 정부 중앙부처 위주로 추진되고 있지만 내년부턴 지자체나 현업 공공기관 역할도 한껏 커질 전망이다.

국민과 시장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려는 시범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혁신수요 인큐베이팅과 혁신제품 스카우터가 그것이다. 혁신수요 인큐베이팅은 아이디어 단계의 국민 의견을 수렴해서 민간기업에 개발 공고를 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혁신장터를 통해 국민 아이디어를 수시 모집 중인데, 올 연말에 20건 안팎의 아이디어를 선정해서 내년에 제품 개발 공고를 낼 예정이다. 혁신제품 스카우터는 벤처기업협회 임원 등의 전문가를 스카우터(현신제품 추천위원)로 위촉해서 혁신적이고 공공성이 높지만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제품을 발굴하는 제도다.

혁신기업의 해외 진출, 외국기술 종속에서의 탈출

그럼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임헌억 과장은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일단 수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공기관 구매예산의 1.0%를 혁신조달에 할애하도록 했는데, 올해부턴 그 비중이 1.2%로 높아졌습니다. 약 5,4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혁신조달에 사용되는 셈입니다.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정책효과를 대변하는 기업들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정책 초기에는 혁신제품이 내수 위주로 사용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혁신조달 기업의 일부가 해외시장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지금도 몇몇 기업이 해외진출을 앞둔 상황입니다.”

충청북도의 웃샘은 외국산보다 가벼우면서 가격은 절반으로 낮춘 음압캐리어를 개발했다. 조달청 혁신제품으로 지정된 음압캐리어는 혁혁한 기능을 선보이며 코로나 현장을 종횡무진했고, 조달업체의 공신력을 확보하면서 해외에 수출 중이다. 다양한 질병을 다중진단하는 키트를 개발한 피씨엘도 혁신지향 공공조달 제도를 잘 활용한 기업이다. 피씨엘 제품은 2019년 혁신시제품으로 지정되어 혈액 공급기관에서 시범 사용한 이후 해외에 400억 원이 넘는 수출실적을 올렸다. 재난안전예방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샤픈코트 제품은 유사품이 없어서 ‘스마트 소화기’라고 뭉뚱그려 설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우수성을 전 세계에서 인정받아 해외의 수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외산에 의존해야 하던 제품을 국산이 대체하게 된 것도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이 일구어낸 성과다. 수소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지만 저장과 운송이 쉽지 않다. 원일티엔아이는 외국산 제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수소충전기와 수소저장합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10월, 원일티엔아이의 수소추출기는 조달청 심사를 거쳐 혁신시제품으로 선정되면서 공공기관 수의계약 자격이 생겼다.

임헌억 과장은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이 혁신기업의 성공 발판이 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이 혁신지향 공공조달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에 공공조달 실적은 의미가 큽니다. 공공조달 실적이 있어야 해외진출이 가능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기업이 이렇게 혁신조달을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전체 시장에서 혁신조달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조달 예산이 크다고 하지만 공공시장은 전체 내수시장의 20~30%에 지나지 않습니다. 혁신조달 시장은 공공시장의 1% 남짓에 불과하고요. 기업은 열심히 투자하고 연구개발해서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과를 조달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손을 놓아버려선 곤란합니다. 조달청에 들어오면 조달청이 알아서 다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업 스스로 판로를 찾고,
공공기관의 눈에도 띄게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금 혁신지향 공공조달의 성과로 이야기되는 기업은
모두 적극적으로 시장에서 나선 곳들입니다.
기업은 결국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저는 혁신지향 공공조달이야말로
정부가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온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온실 안에서 계속 머무는 건 불가능합니다. 혁신장터는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혁신제품으로 성공판정을 받으면 더욱 적극적인 기업 활동으로 제품을 우수제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공공 시장에서도 역할을 키우고, 민간시장으로도 나가고, 해외시장에서도 경쟁하도록 해야죠.”

그렇다면 임헌억 과장은 혁신지향 조달정책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모든 대선주자들이 (혁신조달을) 늘린다고 말합니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옳은 방향이란 뜻일 테고, 계속 비중이 확대되리란 의미겠죠. 하지만 안 해보던 제도를 시행하는 만큼 현장의 고충도 적지 않습니다. 조달청 9층에선 여러 인원이 함께 혁신조달 업무를 봅니다. 하지만 다른 부처의 혁신조달 담당자는 대부분 한 명입니다. 다양한 과의 혁신조달 업무를 그 한 사람이 진행해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현업에서 혁신지향 공공조달은 낯설고 새로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인센티브 제도도 만들려고 합니다. 일선의 혁신지향 공공조달 담당자들에게 고충이 적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혁신조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합니다. 세상은 우리 공무원들을 가장 틀에 박힌 사람들이라고 바라봅니다. 혁신조달은 그런 생각을 바꾸어줄 기회이기도 합니다.” 임헌억 과장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혁신조달 성과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그 성과가 모여서,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혁신기술을 개발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루어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