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로봇은 공상과학영화에나 존재하는 상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이자 국가경쟁력의 척도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08년 3월 지능형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하 로봇법)을 제정하고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로봇산업 육성 채비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통과된 우리나라의 로봇법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인력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로봇산업은 그야말로 신산업 그 자체였기 때문에 넘어야 할 규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1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에 따라 2010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로봇산업진흥원을 설립하고 2011년부터 본격적인 로봇사업 발굴과 지원에 나섰다.
2019년 정부는 2023년까지 로봇산업의 글로벌 4대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담은 제3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23년까지 로봇산업 시장 규모를 15조 원 수준으로, 1천억 이상 로봇전문기업을 20개사로. 제조로봇 보급대수를 누적 70만 대까지 확대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2022년 5월부터 8월까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가 진행한 2021 로봇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로봇 매출 규모는 2020년 대비 2.5% 증가한 5조6,000억 원 수준이며 생산규모는 2.6% 증가했다. 로봇사업체도 총 2,500개 사로 전년보다 3%안 73개 사가 늘어났다. 산업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애초 목표에는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2019년 8월의 관계부처 합동조사 자료는 자동차, 전기·전자 업종에서 로봇 활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우리나라가 로봇밀도 세계 1위와 제조로봇 세계 5위권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로봇활용대수는 평균 85대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710대를 활용하고 있으니 제조업현장에서의 로봇 활용도는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혁신지원사업단의 문상미 서비스로봇혁신팀장은 2016년 학계에서 한국로봇산업진흥원으로 옮겨와 대한민국 로봇산업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전문가다. 그녀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어떤 기관인지 먼저 설명했다.
“로봇산업의 R&D는 KEIT(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담당하고, 그 밖의 로봇산업 전반 업무를 한국로봇산업 진흥원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팀은 서비스로봇 전체에 대한 개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로봇 개발의 지원사업도 하고, 서비스로봇이 시장 나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규제정책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로봇산업은 완전히 새로운 신산업입니다. 연구개발이 끝난다고 곧장 시장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개발이 끝난 로봇이 시장에 나가려면 시험평가와 표준인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인증은 크게 안전성을 확인하는 위험성 평가와 성능평가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로봇은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 아닙니다. 유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증과 평가 기준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선 표준을 만들기도 하고, 검증도 진행합니다. 물론 진흥원 이외에도 많은 인증기관이 국가표준을 만드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국가표준에 맞춰 인증과 시험평가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장비를 구비해야 합니다. 진흥원은 로봇과 관련한 대부분의 인증과 시험평가를 커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봇이란 무엇이며, 로봇시장의 현황은 어떨까? 문상미 팀장은 로봇의 정의가 다양하다고 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로봇법에 근거해서 설립된 기관입니다. 로봇법의 정의에 따르면 로봇은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해서 동작할 수 있는 것으로, 소프트웨어까지 로봇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봇산업의 실태를 조사하는 국제로봇연맹의 정의는 좀 다릅니다. 3개 이상의 축을 가진 자동조정장치로, 자동 제어되고 재프로그램이 가능한 것을 로봇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로봇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로봇시장은 4대 분류 또는 7대 분류에 따라 나뉘는데, 크게 제조로봇과 서비스로봇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제조업 현장에서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는 제조용 로봇은 이미 많이 보급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로봇산업의 내수시장은 약 5~6조 원 수준이고 80% 이상이 제조 분야에 몰려 있습니다. 서비스로봇 시장의 잠재력은 훨씬 크지만 아직 서비스로봇의 시장은 열리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높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로봇 시장이 열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문상미 팀장은 서비스로봇 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제조업 현장에는 많은 비용을 투입해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억대의 예산을 들여도 제조로봇을 설치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비스로봇은 제조로봇과 달리 사람이 하는 일을 합니다. 서비스로봇을 사용하려면 두 개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충족해야 합니다. 사람보다 일을 잘하거나 경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아직 두 개의 조건 중 어느 쪽도 충족할 만큼 서비스로봇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가격 경쟁력을 갖춘 로봇은 청소로봇, 교육용 로봇, 서빙로봇 정도입니다.”
서비스로봇의 시장 잠재력은 크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수요 없이 개발만 계속할 수 있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기술개발을 진행해서 기술 수준을 높이려면 시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서비스로봇 개발과 시장 사이에는 이러한 모순이 존재한다. 문상미 팀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서비스로봇의 성장을 견인하는 동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서비스로봇은 업무의 질과 비용 때문에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비대면 서비스를 해야 하는 특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서비스로봇이나 방역로봇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습니다. 많은 대기업이 로봇시장에 참여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배달로봇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 거죠.”
그러나 수요가 만들어졌다고 서비스로봇이 곧장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비스로봇의 안전성과 효용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빠르게 실증사업에 나섰다.
“로봇 개발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이슈가 생기자마자 기업은 긴급하게 방역로봇의 개발을 완료했고, 2020년 하반기부터 한국로봇산업은 방역로봇의 성능평가에 착수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지원활동을 벌였다. 혁신수요 인큐베이팅도 정부지원의 일환이었다. 문상미 팀장은 공공기관에서 방역로봇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방역로봇의 효과적인 배치를 위해 조달연구원과 힘을 합해 혁신수요 인큐베이팅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방역로봇을 개발한 기업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정부 대전청사는 방역로봇을 수요하려 하였고, 방역로봇을 개발한 기업은 이미 다수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방역로봇을 공공기관에 투입해야 효과적으로 방역이 이루어질지 RFP (제안요청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은 정보보안지침에 따라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와이파이를 대신할 프라이빗 통신망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방역로봇이 소독해야 할 층도 고려해야 합니다. 1개 층만 방역하는 게 아니라면 로봇이 여러 층을 이동할 수 있어야 하죠.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밖에도 다양합니다. 코로나19의 방역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외선을 이용한 UV 살균방식, 공기정화 방식, 직접 약재를 분사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공기정화 방식으로는 언제여도 상관없지만 자외선은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사람이 없는 야간에 방역을 진행해야 합니다. 약재 분사방식은 장단점이 명확해서, 소독효과는 확실하지만 얼룩이나 미끄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방역로봇을 도입하려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방역로봇을 도입하려는 수요처도 로봇을 활용한 방역경험은 없기 때문에 요구조건을 구체화하기 어렵습니다. 혁신수요 인큐베이팅은 가장 적합한 시나리오를 실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혁신수요 인큐베이팅 과정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로봇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공공시장에 진출하도록 지원했습니다.”
문상미 팀장은 다양한 실증사업을 통해 민간 로봇기업과 접촉해왔다. 그녀는 우리나라 서비스로봇 제조업체의 가장 큰 고민을 시장의 부재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달시장에서 서비스로봇을 흡수할 수 있다면 서비스로봇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비스로봇 시장은 아직 조사할 시장 자체가 없을 정도로 초기단계입니다. 국제로봇연맹의 연례보고서도 제조로봇 시장만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로봇 시장의 잠재가능성은 제조로봇 시장보다 크다고 봅니다. 문제는 현재 서비스로봇 제조기업의 판로확보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민간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서비스로봇 제조기업은 정부시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달시장에 진출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혁신조달의 패스트트랙2는 상용화 전 단계의 시제품 가운데 혁신성과 공공성을 갖춘 제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연구개발이 끝난 제품이 아니라 실증이 끝난 서비스로봇도 패스트트랙2에 포함시키면 서비스로봇 시장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문상미 팀장도 서비스로봇의 가격 대비 경쟁력을 기업이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서비스로봇 가운데는 세계 최초의 기능을 갖춘 제품도 적지 않다며, 민간시장이 이런 제품을 소비하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공공에서 선제적으로 사용하여 트랙레코드를 만들어줄 때 민간 시장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로봇산업에 진출한 기업 CEO 가운데는 젊은 분이 많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벽 앞에서 무너지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반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는 기업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시리즈A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도 있었고, 해외 지사까지 내놓는 기업도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의 로봇시장은 제조로봇 시장 위주입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제조로봇 시장의 표준이 되긴 어렵습니다. 이미 일본과 독일이 제조로봇의 표준을 많이 가져간 상황입니다. 하지만 서비스로봇은 워낙 다양하고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품마다의 시장표준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배달로봇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로봇표준원은 이런 분야의 규제를 빠르게 개선해서 관련 기업이 트랙레코드를 쌓고 최적화된 사업모델을 만들도록 노력 중입니다. 이를 통해 국제표준을 선점한다면 서비스로봇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고, 국가경쟁력 향상으로도 이어질 겁니다.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진흥원의 역할입니다.”
문상미 팀장은 서비스로봇의 발전으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서비스로봇이 단기간에 사람을 대체하진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사람이 하기 싫은 다양한 서비스 업무를 서비스로봇이 대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의 낮은 출산율 해결에 로봇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아직까지 서비스로봇 산업은 초기단계일지라도 그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대한민국 로봇산업이 빠르게 진보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혁신조달도 이들의 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