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빈은 플라스틱 페트병과 캔을 넣으면 자동으로 분리수거하는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으로 주목받는 스타트업이다. 자판기나 지하철 매표 기계처럼 생긴 네프론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술로 페트병과 캔을 선별하면, 사용자는 포인트 적립 방식의 보상을 받는다. 언론은 수퍼빈을 뛰어난 웨이스트 테크 기업으로 소개하지만,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웨이스트 테크라는 용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웨이스트 테크라는 시장이 존재하긴 하나요? 물론 폐기물 시장은 있습니다. 하지만 폐기물 시장 안에서 별도의 테크 시장이라는 게 형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폐기물의 선별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폐기물의 테크 시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빈 대표는 폐기물 선별에 인공지능을 투입했다는 단편적인 사실 때문에 수퍼빈에 관심이 쏟아지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세상의 생산과 소비 구조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흔히 선형구조라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제품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폐기의 단계를 거칩니다. 기존 방식에서는 폐기물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수퍼빈은 소비에서 폐기로 끝나는 선형경제를 지양하고, 폐기 이전에 제품을 선별·수거해서 소재화하여 사용자에게 다시 공급합니다. 이를 통해 세상이 순환경제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수퍼빈의 목표입니다.”
선형경제 시스템에서 소비를 마친 제품은 대부분 폐기된다. 수작업을 통해 일부가 재활용되긴 경우가 없진 않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수퍼빈은 이를 저품질 재활용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재활용 쓰레기의 분리배출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라고 하지만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OECD의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연간 3.6억 톤에 이르는데, 40%가 매립되고 27%는 단순 소각된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약 13%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 방식은 크게 에너지 재활용, 물리적 재활용, 화학적 재활용의 세 가지로 나뉜다. 에너지 재활용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발전시설이나 시멘트 공정 등의 대체연료로 활용하는 것인데, 사실상 플라스틱을 태워서 열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EU에서는 에너지 재활용을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리적 재활용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선별해서 펠릿 형태 등의 물리적인 재생원료로 가공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물리적 재활용을 위해서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선별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PVC를 다른 플라스틱과 섞으면 제품 강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염화수소와 같은 유해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등에 들어가는 폴리스타이렌은 얇고 가벼워서 재활용의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각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성격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뒤섞어 물리적으로 재활용할 경우 질이 떨어지는 플라스틱 원료가 나오기 십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플라스틱 물리적 재활용 수준은 저품질 재활용이라는 한계가 노출되는 것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고분자 형태의 플라스틱을 화학적 반응을 통해 원료나 다른 형태의 화학제품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자원순환 효과는 높지만 높은 처리비용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민간의 폐기물 분리배출 독려만으론 한계가 있다. 사용한 플라스틱이 다시 사용될 수 있게 뒷받침하는 산업생태계가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 수퍼빈은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수퍼빈이 꿈꾸는 순환경제 시스템에서 생산되고 소비된 제품은 폐기되기 이전에 선별 및 수집과정을 거친 후 소재화 공정을 위해 옮겨진다. 소재화 공정에 따라 플레이크와 펠릿 형태로 만들어진 폐플라스틱은 다시 생산에 투입된다. 수퍼빈의 순환경제 시스템에서 플라스틱 등의 기존 자원은 소비 이후 폐기되는 대신 선별·수집, 물류·적재, 소재화 공정의 세 단계를 거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수퍼빈은 단순히 캔과 페트병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세 단계의 공정을 직접 책임진다.
선별·수집은 네프론의 몫이다. 수퍼빈의 네프론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로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정확하게 선별하고 수집한 후 이동이 용이하게 내부에서 즉시 압축한다. 수퍼빈은 순환자원 운송과 저장을 위한 물류 인프라도 완성했다. 압축된 폐기물은 수퍼빈의 수퍼카에 탑재되어 전용 물류 허브인 순환자원 창고로 옮겨진다. 앞서 언급했듯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수준은 수집하여 운반한 자원의 질에 비례한다. 네프론은 포장을 완전히 벗기고 세척한 폐기물만 선별해서 수집하기 때문에 전국에 산재한 수퍼빈의 16개 물류창고에는 순도 높은 자원만 가득하다. 수퍼빈의 스마트팩토리인 아이엠팩토리에서는 인공지능 선별 설비를 활용해서 수집 페트병의 순도를 높인다. 이 과정에서 축적한 빅데이터는 수퍼빈의 PET 플레이크의 생산품질을 더욱 높여간다.
수퍼빈의 순환경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의 선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선의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높은 제품 품질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성을 가지게 되었다.
김정빈 대표는 순환경제로의 이양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만 년 전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0.15% 정도였답니다. 1만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지구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57%를 넘어선다고 합니다. 100년 전 20억이 안 되던 인구가 1990년대에는 50억 명을 넘어섰고, 다시 80억으로 늘어나는 데 20~30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야생동물은 계속 멸종해서, 이제 야생포유류는 3%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들의 손자 대에선 사자나 호랑이를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핵무기의 개발 이후 전쟁억제력이 생기면서 인구폭증을 막아줄 요인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인류는 코로나 같은 팬데믹도 막아내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지구 생태계 안에서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인간의 서식지인 도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컨셉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사람은 고기나 곡식을 먹고 사는데, 목축이나 농경을 사막에서 하진 않습니다. 산림지역의 나무를 베어내고 목장과 농지를 조성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인류와 지구가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축과 농경의 비중을 줄이면서, 그 기능을 도시 안으로 가져오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혁신기업들이 스마트팜을 도시 안에 조성하고, 대체육을 만들고, 버섯으로 가죽을 만드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수평적으로 팽창해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도시가 아니라 밀도를 높인 도시를 만들어 운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서식지와 분리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정빈 대표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새로운 도시, 밀도 높은 도시를 운영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도시 안에서의 평등권 문제나 감염병 문제 등 다양한 이슈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드는 모든 생산물은 결국 폐기물시장으로 모이게 됩니다. 폐기물시장이 어려운 건 인간의 모든 생산 활동 결과가 결국 이쪽으로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폐기물은 소각·매립하거나 재활용하게 됩니다. 지구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으려면 폐기물의 소각과 매립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소비를 마친 제품을 원하는 품질과 형태의 폐기물로 가공해서 생산자가 원하는 적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퍼빈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도시 설계에 참여해서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현재 수퍼빈은 LH공사의 3기 신도시 자원순환 인프라 구성 함께 논의하고 있다. 부산에코델타 스마트시티 스마트빌리지 시범사업에는 폐기물 턴키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2015년 6월 창업 이후 수퍼빈은 어느 정도의 흑자를 올리고 있을까? 김정빈 대표는 웃으며 “0원”이라고 대답했다. 2022년 10월 현재 18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후속 투자를 포함해서 41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아직까진 수퍼빈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에 투자하느라 흑자 전환하지는 못했다. 김정빈 대표는 내년부터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등의 음료회사는 2025년부터 모든 음료용기를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품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인 화장품과 전자제품 브랜드도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순환경제로의 전환에 동참할 계획이다.
바젤 협약에 따라 국가간 플라스틱 폐기물의 이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최근 몇 년간 플라스틱 폐기물이 급증했다. 자연스레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에 대한 사회적 문제인식이 고조되었고, 수퍼빈에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빈 대표는 혁신조달을 통한 국가조달 시장 참여가 수퍼빈에 큰 힘을 실어준다고 이야기한다.
“조달시장 진입은 레퍼런스를 얻는 차원에서 의의가 큽니다. 사업도 개인의 취직과 다르지 않습니다. 레퍼런스가 중요하죠. 국가가 수퍼빈의 혁신제품을 조달상품으로 수요했다는 레퍼런스는, 단순히 양적인 매출증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레퍼런스가 됩니다. 혁신조달은 우리 제품이 변화하는 시장과 사회적 가치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가늠해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많은 기업에서 수퍼빈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문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혁신조달 실적은 매우 강력한 추천장이 됩니다.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 추천장인 거죠.”
지금도 수퍼빈의 네프론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수퍼빈은 2021년 안양시 그린스마트시티 인프라구축에 참여해서 올해 네프론 100대 설치를 완료했다. 삼성디스플레이, SK가스충전소, 롯데그룹과 유통사, 네이버, SK그린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우아한형제들 등의 기업에서도 네프론을 설치했다. 화성시와 SK지오센트릭과 그린뉴딜 자원순환 인프라 구축 시범사업의 MOU도 체결했다. 강동구청과는 순환자원 대면회수 사업인 수퍼모아의 MOU를 맺었다. 현재까지 1억 개 이상의 페트병과 5,000만 개 가까운 알루미늄 캔이 수퍼빈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을 네프론에 투입해서 소비자들이 얻은 포인트는 환전금액으로 9억8,000만 원을 넘는다. 이 모든 결과가 정말 놀라운 이유는, 수퍼빈의 순환경제가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수퍼빈은 UN의 추천을 받아 환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어스샷’의 후보에도 올랐다. 어스샷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큰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가 영국 왕실재단인 로열 파운데이션과 함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제정한 상이다. 네이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친환경 도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를 수주하려고 노력중인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장관에게 수퍼빈을 소개하며 수주전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고 한다. 수퍼빈이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순환경제 분야에서도 국위를 선양하게 될 것이다.
수퍼빈은 세계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세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기여한다는 높은 이상을 담고 있다. 혁신조달의 레퍼런스가 그 꿈의 실현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