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조달합니다_멀틱스

장애인용 민원 안내 시스템으로
청각 장애인의 정보 취약성을 해소한다

21세기에서 정보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시청각 장애인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에도 불편을 겪는다. 그들에겐 키오스크 형태의 민원 정보 안내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조차 힘에 겨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이런 불편들이 모여 장애인의 정보 격차를 만든다. 시각 장애인은 점자나 음성 안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청각 장애인에겐 어떠한 도움도 제공되지 않는다. 멀틱스는 수어 안내 기능을 갖춘 민원 안내 시스템 누리뷰를 개발했다. 대전 시청과 지하철역에 시범 설치되어 효용성과 공공성을 인정받은 누리뷰는 혁신조달 제품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공공기관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 누리뷰는 관공서의 민원 관련 내용을 수어로 서비스한다. 하지만 어떤 기관에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담을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없다. 누리뷰는 청각 장애인의 정보 격차 해소에 획기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누리뷰의 개발업체인 멀틱스는 제2회 혁신조달 경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그 가능성과 공공성을 인정받았다.

선진국에는 선진국형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2021년 7월 2일,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무역개발이사회 폐막 세션에서 대한민국의 지위는 그룹A(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룹B(선진국)로 만장일치 가결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수준으로 커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체감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국제회의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된 건 처음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성장의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많은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특히 장애인의 복지 확대는 선진국으로 이행하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6년에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 한국수어 사용 환경 개선이 의무화되었고, 2018년에는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멀틱스는 원래 아이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뇌파 관련 프로그램이나 VR을 활용한 게임 등 콘텐츠를 개발하는 업체였다. 멀틱스는 특히 동작인식 기술에 관심을 가졌는데, 2018년 장애인정책 정보를 입수하고 개발 수요를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소외계층인 시청각 장애인은 데이터 정보취득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멀틱스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정보 전달 시스템에 동작인식 기술을 적용하면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에 수어언어법이 정식으로 공표되면서 장애인 정보취득을 위한 서비스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리라고 전망했습니다. 공공기관에선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도로에서도 점자 표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한 거죠. 수어언어법이 공표되었으니 머지않아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공서비스도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적 수요가 일어난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해서 청각장애인용 서비스의 연구개발을 시작했습니다.”

2018년, 멀틱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제로 대전 대덕구청 홈페이지에 청각장애인용 서비스를 개발했다.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문장은 일반적인 구어와 달라서 일반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장애인 입장에선 그 어려움이 한결 크다. 멀틱스는 대전 대덕구청 홈페이지의 내용을 수어 영상으로 번역해서 표시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부수적으로 구청 민원실에서 동작인식 장비로 청각 장애인의 수어를 동작 인식해서 통역하려는 시도도 해봤다. 멀틱스의 김정 연구소장은 당시의 주요 과제는 홈페이지 내용의 수어 번역이었고, 동시통역의 수준은 초보적인 단계였다고 회고했다.

“현장에서 수어의 소통을 지원해보려 했지만 쉽진 않았습니다. 장애인이 전달하려는 의도를 민원으로 전달하는 기술은 미흡했습니다. 100% 제대로 의사소통하진 못했습니다. 간단한 단어를 정리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과기부 과제를 수행하면서 멀틱스는 청각장애인의 상황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들의 시력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우리처럼 문장을 읽고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건 아주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오해입니다. 청각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메커니즘으로 문자를 해독합니다. 우리는 문장을 읽고 쉽게 내용을 받아들이지만 그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프로세스가 다르니까 문장을 읽는 속도와 이해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청각 장애인은 수화나 수어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가장 편합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정보를 수화나 수어 형태로 풀어낸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각 장애인은 남들보다 적은 정보만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정보력의 차이는 경제적 격차로 이어집니다.” 김정 소장의 설명이다. 이후 멀틱스는 수어의 동작인식 기술을 고도화해나갔다.

2019년은 대전광역시 관광의 해였다. 대전시청은 관광 관련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었는데 멀틱스가 작업을 수주했다. 이때 멀틱스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챗봇 시스템인 누리봇을 개발했다. 챗봇 서비스에서 수어를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구청의 민원 안내 문자에 수어 영상을 함께 발송하는 서비스도 개발했다.

청각 장애인용 수어를 동작 인식 기술에 담다

이렇게 경험과 기술을 쌓아가면서 멀틱스는 행정안전부의 과제로 누리뷰의 개발에 착수했다. 관공서의 정보 제공 서비스에서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누리뷰는 장애 유형별 인식 기술을 적용한 정보 제공 시스템이다. 아주 스마트한 키오스크를 떠올리면 된다. 미러 형태의 누리뷰 앞에서 장애인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고 취득할 수 있다. 누리뷰는 먼저 근접 센서로 사용자를 파악한다.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지체 장애인이나 신장이 작은 사용자라면 누리뷰의 화면 레이아웃을 전환하여 낮은 높이에서 의사소통이 진행되도록 한다. 비장애인이라면 일반적인 키오스크처럼 음성과 터치 방식으로 원하는 정보를 요구한다. 키오스크도 화면과 소리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각 장애인은 음성으로 누리뷰와 의사소통한다. 음성으로 요구와 답변을 주고받는 시스템은 누리뷰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 바 있다. 휴대폰의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에 육성으로 안내를 요청하는 상황이 바로 음성 인식 기술을 적용한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누리뷰의 특장점은 청각 장애인용 정보 제공 서비스다. 미러 형태의 누리뷰 앞에서 청각 장애인이 수어로 대화를 시도하면, 누리뷰의 동작 인식 기술은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분석한다. 그리고 수어로 원하는 정보를 알려준다. 김정 연구소장은 수어 동작을 인식하기 위해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동작 인식은 아주 새로운 기술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개발되었고, 게임 등에서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화 동작 인식은 과거의 기술과 차별화된 점이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큰 동작을 인식합니다. 영화나 CG 작업을 위해서 동작을 인식할 때에는 센서를 많이 붙여서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수화의 동작은 온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로 손목이나 손가락으로 복잡한 의사표시를 합니다. 손가락 몇 마디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일반 동작인식보다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거죠.”

수어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동작 인식 기술의 정밀도를 높이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고 김정 연구소장은 고백했다.

“사람들은 수어에 대해서 많이 오해합니다. 나라마다 수어가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는데,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수어도 생활 습관이 모여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생활환경이 다르면 서로 다른 언어가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사투리의 단어와 억양이 다르듯 수어 역시 나라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있습니다. 수어는 5년 전(2016년)에야 공식적인 국가 언어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직 표준 규정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건 멀틱스가 아니라 언어연구자들이 고민하고 지정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서비스용 수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큰 애로사항으로 작용했습니다.”

2021년 2월, 누리뷰는 대전시청 3개 장소(시청 1층 정문, 1층 청사 안내지도 옆, 2층 민원실)와 대전 지하철역사 3개 장소에 처음으로 설치되어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김정 연구소장은 청각 장애인용 민원 서비스는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헝가리의 한 대학교에 영어 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계가 한 대 있다고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수어 동작 인식 기술에 기초해서 민원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누리뷰가 최초입니다.”

수어를 인식하고 수어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금방 입소문을 탔다. 많은 공공기관에서 멀틱스의 제품에 대해 문의해 왔다. 그리고 정부 과제로 서비스를 시작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6월 1일, 누리뷰는 혁신제품으로 지정되었다.

혁신조달을 타고 판로 확대에 나선 누리뷰

혁신지향 공공조달 시스템을 통해 멀틱스는 성동구청과 역삼세무서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누리뷰 최초의 판매 계약이었다. 기관별로 소비자들이 찾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2021년 12월 20일 현재, 정보 콘텐츠를 재구성하는 커스터마이징 절차가 멀틱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많은 공공기관에서 누리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정 연구소장은 누리뷰의 판로가 넓어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멀틱스에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소문이 나자 공공기관에서 먼저 누리뷰의 제품 정보를 요청하곤 했습니다. 정부 수요가 클 것 같습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도 수요가 일어날 테고, 단계적으로 의무 서비스로 지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대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멀틱스는 서비스 다각화를 계속 추진할 계획입니다. 청각 장애인에겐 의료와 금융 정보가 절실합니다. 의료기관과 금융기관 같은 민간에서도 청각 장애인용 정보 서비스를 필요로 할 겁니다.”

하지만 김정 연구소장은 매출은 공공성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라며 누리뷰가 청각 장애인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이 편하게 이루어지면 사회에 참여할 기회도 늘어날 겁니다. 누리뷰가 청각 장애인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멀틱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기업들이 청각 장애인의 정보 격차 해소에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누리뷰를 사용해본 청각 장애인은 편리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많은 청각 장애인들은 낯선 기계 앞에서 위축되어 버립니다. 정보의 취약성은 경제적 격차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많은 청각 장애인이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못하고, 고급 기계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에게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 누리뷰를 개발했는데, 새로운 기계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하려는 상황도 종종 봤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개발하거나 시연할 때, 그분들의 의견을 받을 때 설명을 아주 자세히 드려야 합니다. 체험해본 다음에는 만족하시는데, 처음 접근이 무척 힘듭니다. 청각 장애인들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많은 기업과 기관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이 뒤섞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멀틱스는 관공서의 정보 안내 서비스에 동작 인식 기술을 적용해서 청각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앞으로 멀틱스의 누리뷰는 교통시설, 문화시설, 병원, 도서관 등 다양한 장소로 확대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자산이다. 취약계층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회 안정성과 복지 확대, 경제격차 해소 등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대한민국을 진짜 선진국으로 만든다. 2021년 12월, 멀틱스는 제2회 혁신조달 경진대회에서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정 연구소장은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서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향상시키겠다고 다짐하며 수상 소감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