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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주권혁신조달

미국과 중국의 세계 양강 체제가 강화되면서 이들의 다툼도 격화하고 있다. 특히 첨단과학기술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전례 없이 뜨겁다. 이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까? 그 답도 첨단과학기술에 있다. 미국과 중국만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순 없지만 핵심 전략기술을 확보하면 오히려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기술주권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공공조달의 혁신적인 활용은 전략기술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비밀 병기가 될 것이다.

국가주권의 핵심이 되는 과학기술

최근 기술주권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권이란 국가가 의사를 결정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때로는 냉혹한 국제질서의 논리 때문에 명목상의 주권이 실질적으론 제한되기도 한다.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가적 의사결정 권한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주권을 지키고 행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외교력 등 그 힘의 종류는 다양하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기술력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변화는 특정 분야에서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전 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온전한 주권국가가 되기 위해선 군사·경제·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지녀야 하는데, 그 실력을 가늠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과학기술의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2021년 11월 17일, 국가미래연구원이 주최한 제53회 산업경쟁력포럼에 기조 발표자로 서울대학교 공대의 이정동 교수가 나섰다.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지내기도 한 그는 기술주권을 ‘국가 경쟁력과 국민 복지를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략 기술과 제조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경제안보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지켜진다는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높아진 우리의 기술력이 자리하고 있다. 2021년 테슬라 열풍이 전 세계 주식시장을 휩쓸었다. 자동차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전기차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테슬라에 투자가 집중된 것이다. 배터리 기술은 전기자동차 분야의 핵심기술로 분류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배터리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전자산업에서도 대한민국은 선두주자다.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역량을 지닌 것이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이렇게 남들이 가지지 못한 고유한 전략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조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차별화된 기술역량을 갖추어야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온전한 주권국가로 자리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중심, 최첨단 기술경쟁

기술주권에 대한 논의가 더욱 뜨거워지는 배경에는 미중 갈등이 있다. 우리는 점점 심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계속 강화해나가는 한편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무역과 외교 등 다방면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첨단기술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군사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기술 경쟁은 점점 더 격화할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인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쟁 분석>은, 중국이 2014년에 이미 인공지능과 5G 통신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했다고 판단했다. 대개 경쟁은 먼저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서 표준을 선점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중국은 2013년 ‘IMT 2020 프로젝트’를 착수하면서 5G 핵심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5G 표준필수특허(SEP)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확보했다(독일 지식재산권 조사기관 IPlytics의 2019년 보고서). 표준필수특허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대체될 수 없는 핵심기술의 특허를 가리킨다. 현재 정보통신혁명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5G 표준필수특허의 34%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중국이 첨단기술경쟁의 중요전선 한 곳에선 전투를 유리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6G 관련 기술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6G의 특허 가운데 중국 특허가 40%를 넘었다는 조사결과도 존재한다.

슈퍼컴퓨터 분야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융합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슈퍼컴퓨터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의 성능을 향상할 때 연산 처리 속도가 빠르고 오차 범위에 가까운 슈퍼컴퓨터는 핵심 인프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4년에 미국의 CDC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후 세계 각국은 슈퍼컴퓨터 산업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계의 슈퍼컴퓨터 운영기관들은 자신들의 슈퍼컴퓨터 속도를 측정한 자료를 슈퍼컴퓨터 순위 관리단체인 TOP500위원회에 제출한다. TOP500위원회는 매년 6월과 11월에 순위를 발표하는데, 2021년에는 일본 국립 이화학연구소와 후지쓰리미티드가 공동 개발한 후카쿠가 1위를 차지했다. 미국 IBM의 서미트와 시에라가 2위와 3위로 그 뒤를 이었다. 중국의 NRCPC(국립 병렬컴퓨팅기술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선웨이 타이후라이트는 4위에 랭크되었다. 처음 등장한 슈퍼컴퓨터 후카쿠에 왕좌를 빼앗기기 전에는 IBM의 서미트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였다. 하지만 2018년에 서미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중국의 슈퍼컴퓨터가 5년 연속 TOP500을 석권했다. 중국의 슈퍼컴퓨터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한 건 티엔허-2A다. 2013년, 미국의 타이탄을 제치고 화려하게 등장한 티엔허-2A는 2021년에도 세계에서 7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였다.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강력한 기술력을 구축한 중국은 2017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공지능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우주 분야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2045년에는 세계의 우주산업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국가전략인 중국제조2024의 10대 전략산업에 항공우주 설비를 포함하기도 했다. 세부 계획도 구체화되고 있다. 중국의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는 텐궁 프로젝트, 탐사선을 보내 2050년까지 달에 연구개발 기지를 세우겠다는 창어5호 계획, 화성탐사선 훠싱 발사 계획 등이 그것이다. 미국은 기존의 군대에서 분리된 우주군(USSF)를 창설하고 달에 유인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주에서의 미국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미국과 중국 정부는 우주에서의 대결을 공론화하기보단 코로나 바이러스 등 내부 문제에 집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선 우주기술 개발이 조용히, 그러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5년까지 10조 위안(1,727조 원)을 투자해서 4차 산업혁명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초반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5월에 개최한 회의에서도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1조4,000억 달러를 미래 신산업의 기반 인프라 확보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강국 건설 목표는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2020년까지 혁신형 국가대열에 진입하고, 2030년까지 혁신형 국가의 선두에 서며, 2050년까지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 강국으로 굴기하겠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과학기술 경쟁에 본격 참여하고(1단계) 선두권에 진입한(2단계) 후 승리하겠다는(3단계)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격렬해질 것이 분명하다.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은 위기가 아닌 기회

미중의 기술패권 경쟁은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고도화하고 융·복합하는 미래기술을 어떤 나라가 완전히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기자동차산업의 예를 들면, 전기자동차 전체가 아닌 전기배터리 등의 핵심기술을 전략적으로 선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술주권에서 관건은 핵심 전략기술의 확보다. 핵심 전략기술을 갖추고 있다면 미국과 중국 가운데 강제로 한쪽을 양자택일하지 않아도 된다. 양측 모두의 존중을 받으면서 국민에게 혜택을 돌릴 수 있다.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 수도 있다. 독일 IPlytics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다음으로 많은 5G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 세계 5G 표준필수특허의 24%를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다. 보고서는 2014년 후반 이후 중국의 기술혁신 생산성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으며, 최근에는 일본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기술혁신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는 우리나라가 꼽혔다. 일본, 중국, 미국은 우리나라의 다음이었다. 우리가 더 빨리 혁신해서 핵심 전략기술을 확보한다면,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기술주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국가의 전략기술 리스트를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략기술을 시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기술과 혼동하기도 한다. 전략기술과 유망기술이 겹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적 핵심 이익을 관철할 핵심요소인 전략기술은 유망기술과 다르다. 전략기술을 높은 이익을 내서 자급자족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첨단기술은 어느 한 나라가 완전히 독점적으로 개발하거나 생산할 수 없다. 여러 나라가 협력해야 완성된다. 기술선진국들은 군사적·경제적·정치적 이해에 따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이합 집산하기도 한다. 이때 소외되거나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독자적인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적 전략기술이다. 전략기술은 개발기술일 수도 있고 생산기술일 수도 있다. 미국은 잃어버린 제조역량을 되살리려고 노력 중이다. 정부가 나서 인텔 등의 제조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동맹국의 첨단 제조공장도 유치하려고 여러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 동맹과의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어떤 분야의 어떤 기술로 우리의 주권을 지켜나갈지 정부가 심사숙고해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한발 앞서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

혁신적인 전략기술 개발에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는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과거 개발도상국 단계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출제한 질문에 빨리 대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제품이나 저런 기술이 필요하다고 선진국이 정해주면, 누구보다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제품을 빠르게 만들려고 경쟁했다. 하지만 빠른 추격자 전략이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다. 어떤 국제기구의 분류에 따라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선진국은 그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먼저(先) 나아가는(進) 나라(國)다. 다른 나라의 움직임에 따라가는 식으론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개발도상국 단계에서는 선진국이 만들어놓은 경기 규칙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이고 경쟁력 확보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스스로 문제를 던지고 답해야 한다.

과거 나폴레옹의 시민군은 유럽 전체와 겨룰 정도로 강력했다. 그건 나폴레옹의 시민군이 전쟁의 규칙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았다. 그때까지의 전쟁에는 ‘정지 시간’이 존재했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음식을 만들고 배급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부대는 ‘병조림’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동하며 배급하고, 이동하며 식사하고, 이동하며 싸울 수 있었다. 전에 없던 기동력은 시민군의 큰 경쟁력이 되었다. ‘앰뷸런스’도 나폴레옹이 처음 도입했다. 부상병은 전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보니 과거의 전쟁에서 부상병은 알아서 자신의 몸을 챙겨야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 시민군은 마차로 부상병을 수송해서 치료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국가가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시민군의 사기를 높였고, 더 용맹하게 싸우는 동기 유발 요인이 되었다. 병조림과 앰뷸런스는 그때까지 통용되던 전투 방식의 규칙을 바꾸어놓았다. 새로운 혁신 기술로 프랑스의 경쟁력을 높였고, 모든 나라에서 받아들이는 표준이 되었다. 이후 영국은 나폴레옹의 병조림을 뛰어넘는 통조림을 개발해서 국방력을 강화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나폴레옹의 부대는 경쟁자들처럼 전투식량의 조리 방식을 고민하는 대신 ‘전장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시간이 꼭 필요할까?’ 하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 입은 병사가 스스로 그것을 책임져야 할까?’와 같이 묻고 전에 없던 규칙을 만들어냈다.

중국이 슈퍼컴퓨터의 강자로 비상할 때에도 발상의 전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 1위가 된 건 2013년의 티엔허-2A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티엔허-2A에는 앞선 모델이 존재한다. 중국의 국방과학기술대학교(NUDT)에서 2011년에 개발한 티엔허-1A가 그 주인공이다. 슈퍼컴퓨터의 연산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CPU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티엔허-1A는 GPU(그래픽 프로세서)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법 탐구에 나섰다. 7,168개의 엔비디아 테슬라 GPU를 탑재하는 병렬 컴퓨팅 방식으로 연결한 것이다. GPU가 그래픽 프로세서의 역할만 하는 대신 CPU프로세서를 돕도록 해서 연산처리 속도를 높였다. 새로운 접근법으로 티엔허-1A는 세계 슈퍼컴퓨터 2위 자리에 올랐다. 중국은 발상의 전환에 힘입어 2년 후 후속작인 티엔허-2A를 내놓을 수 있었다.

공공시장의 초기 수요 흡수로 혁신을 촉진

과거 우리는 빠른 추격자 모델에 맞추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기술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빠른 추격자 모델에서 시장은 제품을 ‘이미’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내놓을 때의 상황은 다르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기 중인 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시약의 경우가 그랬다. 코젠바이오텍은 빠르고 정확하게 코로나 감염을 진단할 수 있는 시약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제품은 이후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그런데 혁신기업이 진단시약을 개발할 수 있던 데에는 정부의 약속이 있었다. 코로나 감염을 빠르고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면 초기 물량을 구매하겠다고 국가가 약속했기 때문에 제품 개발이 진행될 수 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혁신자 입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생산해야 한다.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의 한계 가운데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할지 문제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제품이나 서비스로 개발해야 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폴레옹 시민군의 병조림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직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기술 개발로 연결되지 못할 수도 있다. 정부의 초기 구매 약속이 없었다면 코로나 진단시약의 개발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공에서 초기 시장을 열어서 혁신을 독려하는 것이 혁신조달의 역할이다. 사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구매가 없었다면 중국의 암호기술과 우주기술, 첨단통신기술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공공조달이 혁신기술의 시장을 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반도체산업, IT산업, 항공우주산업 등 미국의 세계적 기술우위산업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조달을 통해 초기 시장이 형성되었다. 공공조달은 예산에 있어서 국가R&D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제 과학기술은 국가의 주권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공공조달 예산의 일부를 혁신기술 개발에 투입해서, 혁신을 촉진하는 것은 기술주권 확립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